시어머니 안계신 첫 해
"성은 문경 '이'씨, 이름은 '리자'랍니다. 시어머니가 안 계셔도 차례상을 혼자 마련할 수 있다면 진짜 한국 아줌마 아닌가요."
설날인 3일 한국땅에 시집와 10번째 설을 맞는 이주여성 이리자(34·문경시 문경읍) 씨는 차례를 올린 뒤 만감이 교차했다. 문경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9살 연상의 남편 이희도(43) 씨와 10년 전 결혼한 리자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딸 채연(7) 양과 아들 유성(4) 군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는 모범 다문화가정이었다. 가장 한국말이 유창한 며느리이고 고부간의 정도 남다르기로 소문난 가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남편보다 더 잘 챙겨주셨다던 시어머니가 65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항상 친딸처럼 챙겨주시고 남편만큼 큰 의지가 됐던 시어머니의 급작스런 사망에 리자 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친절하게 음식 만드는 법이며 어른 대하는 법 등을 알려줘 사랑받는 며느리로서 쉽게 한국문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리자씨는 지금도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셔서 "열심히 살라고 하신다"며 이날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리자 씨의 올해 설은 특별했다. 명절 때면 시어머니의 차례상 차리는 것을 옆에서 돕기만 했던 리자 씨는 올해는 설을 쇠러온 윗동서와 함께 차례상을 위한 음식 마련에서부터 청소, 손님맞이까지 직접 감독(?)을 한 것이다. "필리핀에도 새해를 시작하는 1월 1일을 기념해 가족들이 모이지만 한국의 명절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며 "필리핀은 돌아가신 분들에게 올린 제사 음식은 그분들 몫이기 때문에 먹질 않는데 한국에서는 차례가 끝나면 바로 먹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거의 미국처럼 파티형식으로 치러요, 음식도 스파게티나 샐러드, 바비큐와 같은 음식을 즐겨 먹지요."
하지만 리자 씨는 "바나나보다는 사과를 스파게티보다는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더 맛있어졌다"며 "한국의 설은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같이 만들고 어른들에게 절(세배)을 하면 돈도 주면서 재미있게 보낸다"며 흡족해했다.
하루 종일 전을 부치는 등 명절작업은 한국인 며느리들도 좋아하지 않는 일이지만 리자 씨는 밝기만 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만약 제수씨가 차린 차례상을 보신다면 한 90점을 주실 것 같네요." 설을 쇠러온 시숙 이희태(50·경남 거제) 씨가 거들고 나섰다. "제수씨는 우리 집안에 들어온 복덩어리예요. 차례상도 자격증이 있다면 충분히 따냈을 거예요"라며 자랑이 늘어졌다.
한국 아줌마로 당당하게 맞이한 리자 씨의 10번째 설날은 즐겁기만 했다.
문경·고도현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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