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강의 도시를 만들자] (5)스위스 취리히

입력 2011-01-24 07:29:14

골목마다 물고기 헤엄치는 도심하천...국제비지니스 중심 도약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인 스위스 취리히도 한 때는 심각한 오염도시였다. 공업화로 인해 도심 실개천이 사라졌고 호수는 오염됐지만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인 스위스 취리히도 한 때는 심각한 오염도시였다. 공업화로 인해 도심 실개천이 사라졌고 호수는 오염됐지만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은 자연과 인공이 공존하는 생태도시로 변신했다.
취리히 호수 풍경
취리히 호수 풍경

유럽의 강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국가가 스위스다.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물이 라인강과 다뉴브강의 원류를 이루고 수많은 호수들을 끼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스위스의 강이나 호수 또한 산업화 과정에서 심하게 오염됐다. 스위스의 청정한 자연은 '복구'의 역사다. 국내 도심 강 중 가장 잘 복원된 것으로 평가받는 울산 태화강이 벤치마킹으로 삼은 곳이 스위스 취리히다.

취리히 강과 도심 하천의 복원은 그들만의 특징을 갖고 있다. 가용 토지가 적은 도시 특성상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강 주변의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활용하면서 생태 복원에 나섰다는 점이다. 거대한 호수 뒤로 만년설로 뒤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도시 취리히를 지난 12월 찾았다.

◆도심 하천 흐르는 1급 청정수

취히리호와 200여m 거리에 위치한 세바흐 주택단지. 2차로 도로 한편에 돌로 경계석을 만든 인공 수로가 눈에 띄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흐르는 이 수로는 주택가를 통과해 취리히호로 흘러 들어간다.

인공 수로를 들여다 보는 순간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자갈과 흙이 덮여 있고 곳곳에 형성된 수초 더미로 작은 물고기들이 깨끗한 물을 휘젓고 있었다. 잘 꾸며진 대형 어항을 보는 것 같았다.

"원래 이곳은 복개된 하수구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생활 하수가 함께 취리히 호수로 들어가던 곳이었습니다."

취리히 수자원국 하천 복원 총 책임지안 게르윈 엥겔 박사가 연장이 130m인 인공 수로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16년 전 복개된 콘크리트를 뜯어내고 바닥에 자갈과 흙을 깔아 생태 복원을 했습니다. 수로 폭이 2.5m지만 어류가 살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유속을 줄이기 위해 S자형으로 물길을 만들었죠."

2년 만에 이곳을 찾아왔다는 엥겔 박사는 "주민들이 복원된 실개천을 잘 보전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송어와 가재 등이 사는 이곳은 어린이들의 놀이터가 되며 무더운 여름에는 인근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밤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취리히가 공업 도시로 발전하면서 도심 하천 160㎞ 중 형태를 유지했던 곳은 절반 정도. 크고 작은 하천들이 복개된 후 콘크리트 상판은 도로나 인도로 사용됐고 하천은 하수구의 용도로 100여년 이상 사용돼 왔다.

취리히 하천 복원 사업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85년. 도심 한복판의 알투스케크라인천을 덮고 있는 복개 콘크리트 150m를 뜯어낸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40여 개 이상의 복개 됐던 도심 하천이 생태 복원 작업을 마쳤다.

엥겔 박사는 "학자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참여해 생태 복원을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하천 복원이 시작됐고 현재도 매년 2, 3개 정도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 주민은 물론 생물학자나 화학자, 환경 건축자 등 전문가들이 일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취리히 도심을 통과하는 44㎞ 정도의 하천 중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구간이 35㎞ 정도에 이른다.

복개천의 복원 작업은 우리와 비슷하다. 하수관을 분리 설치해 하천에는 빗물이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흐르도록 해 수질을 유지했고 하수관을 통해 들어온 폐수는 정화 시설을 거쳐 강으로 흘러 보냈다. 하지만 도심 소하천의 상당수가 복원 과정에서 콘크리트 바닥과 제방을 모두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유지한 채 자갈과 흙을 덮고 수생 식물을 심는 식의 복원을 했다. 현실을 인정하며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바탕으로 하천 복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민들에게 돌아온 강변 공원

취리히 호수에서 발원한 리마트 강이 200m쯤 지난 구간에 있는 위킨겐 주택단지. 이 마을 앞 강변에는 '동화속의 숲속'이란 이름을 가진 공원이 있다.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다. 12월 찬바람이 코를 맴도는 날씨였지만 공원에는 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나와 있었다.

4세 된 아들을 데리고 나온 소번(32) 씨는 "겨울에 접어 들었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이곳을 찾고 있다.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하루 종일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원목을 소재로 한 놀이터와 잔디광장뿐 아니라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놀이를 할 수 있는 실내 놀이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다. 또 피크닉을 할 수 있는 벤치와 인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차와 빵을 파는 카페도 있다.

또 깨끗한 강물에 서식하는 오리와 백조 등 10여 가지 이상의 조류와 각종 물고기들은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흥미를 선사한다.

이곳을 관리하는 취리히 시청의 플로리안 사이볼트 씨는 "강 건너편은 예전 취리히의 대표적인 공장지대였고 여기는 슬럼가였다"며 "강물이 맑아지고 공원이 조성된 이후 가장 살기좋은 동네로 바뀌었다"고 했다.

리마트 강의 폭은 50여m 정도. 이곳도 100여년 전 스위스나 독일의 다른 강처럼 직강화 공사를 했다. 홍수를 예방하고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바닥을 파내고 양편으로는 콘크리트 제방을 쌓은 것.

현재 리마트 강은 생태 복원 작업을 마쳤지만 엄격히 따지면 '자연형 복원'은 아니다. 상당 구간 콘크리트 제방이 그대로 남아있고 일부 구간에만 돌 계단을 놓아 친수 공간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사이볼트 씨는 "산악 지역에 형성된 취리히는 도심 땅이 부족해 강 연안 건물을 철거하고 복구할 수는 없다"며 "대신 수질을 정화한 뒤 곳곳에 자연 친화형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복원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리마트 강 복원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홍수뿐 아니라 갈수기를 대비한 복원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엥겔 박사는 "홍수기 기간은 연중 20%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는 유량이 줄어들고 수온이 올라가는 기간"이라며 "리마트 강은 강물이 줄어드는 계절을 대비해 곳곳에 자연 친화형 돌보와 섬을 만들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특이한 것은 치어를 만들어 방류하는 연구소가 리마트 강과 접하고 있다는 것. 이 연구소에서 자라난 치어들은 수로를 통해 리마트 강으로 바로 흘러 들어간다.

한편, 강변 복원은 도심 교통난 해소에도 도움이 됐다.

강변이 따라 잘 조성된 자전거도로와 산책길이 생겨나면서 이곳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시민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

강변 산책길을 걷다 만나 바이첼 씨는 "예전에는 강변 환경이 좋지 않아 낮 시간을 빼고는 찾는 이들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은 강변길을 이용하는 시민들이 늘었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것 같다"고 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도시 취리히. 12월의 취리히는 고풍스런 건물과 맑은 물이 흐르는 도심 호수와 하천이 어우러져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은 곳이였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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