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글을 보내주신 분 중 한 분을 뽑아 대구백화점 10만 원 상품권을 보내드립니다. 많은 사연 부탁드립니다.
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형배(대구 달서구 송현2동)
다음 주 글감은 '헌혈'입니다
♥동생은 방학만 하면 '살빼기'
'방학 시작이다~ 살 빼야지.' 방학만 되었다하면 동생은 살을 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렇지만 방학초기의 다짐은 내일, 또 내일로 미루어지다가 특히 겨울방학에는 새해의 다짐으로 넘어가기 일쑤이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동생은 발목, 허벅지 등 하체의 살을 뺄 수 있는 운동을 집중적으로 하면서 매일매일 살 좀 빠진 것 같지 않으냐며 물어보는 것을 하루도 빠트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하루하루의 모습이 그냥 별다를 것도 없어 동생이 물어볼 때마다 귀찮게 느껴질 정도였지만 동생의 의지를 꺾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로 동생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나면 그래도 동생은 예전에 못 입던 바지를 입을 수 있다며 좋아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동생의 의지가 대단하고 기특하게 여겨져 나도 왠지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의 겨울방학에도 동생의 살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장희지(대구 북구 고성동 3가)
♥학원 대신 친정엄마 댁으로
어릴 적 긴긴 겨울방학마다 외가로 보내졌다. 외삼촌이 산을 넘어서 데리러 오면 동생과 나는 방학숙제 할 것을 책가방에 넣어 외삼촌을 따라서 홀로 계신 외할머니 댁으로 가야 했다.
온갖 먹을거리를 다 동원해도 가기 싫었던 곳이다. 왜냐하면 산을 세 개나 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통사정이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차멀미가 심해 매연 냄새만 맡아도 어지럼증을 동반한 구토로 사경을 헤매야 했으므로 부득이 산을 넘을 수밖에 없었는데, 산을 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가다 보면 오소리도 만나고 토끼, 노루 등 산짐승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들은 정감 있는 동물이다.
초등 4학년 때에는 늑대를 발견하게 되어 무서워서 떨고 있으니 외삼촌이 지니고 온 낫을 부딪쳐 쇠 소리를 내면서 '훠이훠이' 하고 쫓으며 외할머니 집까지 간 적도 있었다. 쇠 소리가 나면 동물이 겁을 낸다고 했다. 그렇게 반나절을 걸어 외가로 가서 한 달을 머물게 되는데 친구가 없으니 심심하기도 하고, 숙제하다가 어려운 문제를 물어서 풀 수 없는 노릇이라 외가에 가기를 무척 꺼려했던 것이다.
삼십 년이 지난 요즘, 겨울방학만큼은 아이들을 실컷 놀게 하자며 학원을 보내지 않는 간 큰 엄마가 된 언니는 아이들을 시골 친정 엄마 댁으로 보내자고 했다. 엄마 혼자 계시니 적적할까봐 보낸 것인 데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고 전화를 해서 데리러 오라고 한다. 할머니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 게임을 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도 하고 앞도랑에 꽁꽁 언 얼음도 깨어 보고 논두렁 밭두렁으로 맘껏 뛰어다니며 자연에서 놀라고 보냈는 데, 그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골이든 도시든 좋은 환경이 정해진 건 없다. 얼마나 잘 적응할 줄 아느냐가 문제다.
그래도 시골환경에서 일주일간 보내겐 된 겨울방학동안 추억 쌓기를 하였던지 이종사촌들과 모여 나뭇가지를 꺾어 새총을 만들어 총알로 쓴 작은 돌멩이가 삐딱하게 날아가 목표물을 못 맞췄다고 아쉬워하며 저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번 겨울방학의 추억이 된 것 같아 기뻤다.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일찍 일어나기 습관 들이기
겨울방학이 되어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제안을 했다."너희들, 겨울방학 동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 아침 6시 30분까지 일어나면 2주일에 만원을 주겠어."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면서 "어머니, 정말 줄 거지?" 하면서 다짐을 받았다. 짠돌이라고 부르는 엄마가 거금을 준다니 믿기지 않은 모양이다. "그럼, 계약서를 쓸까?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번이라도 빠지면 용돈 없다"라고 말하면서 종이에다 적어 줬다. 아이들은 냉장고 앞에 계약서를 붙이고는 내일부터 일찍 일어날 거라면서 좋아한다.
학교가 가까이에 있어도 잠이 많아 지각하기 5분 전에야 학교에 도착하기 일쑤인 아이들을 위해서 잠버릇을 고쳐보고자 특단의 조치로 겨울방학 동안은 바꿔야 할 습관들 중 하나였다. 그렇게 시작한 일찍 일어나기는 일주일을 넘기고 2주일이 되어갈 무렵 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계획 실패이니까 이번 주는 못준다고 하면 다른 요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며칠은 봐줘가면서 습관을 고치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서서히 불만이 터져 나오는 아이는 "어머니,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실수할 수 있으니까 봐 주세요"라고 한다. 계획을 고쳐주지 않으면 죽어도 못 일어날 것 같다는 둘째 아이의 불만 섞인 발언에 알았다고 말하면서 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오늘 아침도 아이들의 늦잠 버릇을 고치기 위해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땔감 구하러 수십리 걸어
우리 세대들에게 겨울방학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라면 힘들었던 날을 더 많이 떠올릴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시골에서도 대부분의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여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따뜻한 물이 금방 나오고 방안도 따뜻해지지만 1970년대 연료가 귀하던 그 시절에는 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해와야만 난방을 할 수가 있었답니다. 그것도 멀리 떨어진 깊은 산에 가야만 겨우 땔감을 구할 수 있었답니다.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겨울방학을 하게 되면 컴퓨터나 오락에 매달려 하루 종일 보내겠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들의 겨울방학은 아버지를 따라 땔감을 하러 가는 게 하루의 일과였답니다. 새벽 일찍 아버지와 함께 리어카를 끌고 땔감을 하러 20여km를 가야했습니다. 리어카에는 어머니가 챙겨주신 나무도시락도 있었습니다. 이 나무도시락이 보온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반찬통도 없어 밥과 함께 넣어가야 합니다.(참고로 나무도시락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것임) 당연히 반찬통이 따로 없어 도시락이 흔들리다 보면 밥과 뒤섞여 비빔밥이 되었답니다.
리어카를 끌고 큰 산에 도착하면 어느덧 점심 때가 되고 말죠. 아버지와 함께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앉아 꽁꽁 얼은 꽁보리밥을 햇볕에 녹여가며 생된장과 무 몇 조각을 먹을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30여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네요. 지금이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는 반찬을 먹을 수가 있지만 당시에는 고작해야 된장 아니면 김치였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얼마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해봅니다. 비록 힘든 시절이었지만 그때의 겨울방학이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김명수(대구 달성군 현풍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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