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참 연한 배같이 싹싹한 아이로구나. 스스로 밝히기엔 뭣하지만, 어릴 적 난 어른들에게 늘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집에서든 길에서든 부모님과 친척, 이웃 어른들은 나만 보면 서로 다투듯 칭찬하기에 바빴다. 넌 참 인사도 예쁘게 하는구나, 부르면 어디서든 대답부터 하며 금방 달려오는구나, 넌 밥알 한 톨도 흘리지 않는구나.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참 믿기지 않겠지만, 중학교 1학년 신체검사에서 몸무게가 30kg정도 되었을 정도로 나는 왜소하고 허약한 아이였다. 새벽에 아버지 등에 업혀 공군 의사아저씨네 병원으로, 자갈마당 '빼내는 집'(체하면 갈색약과 물을 먹인 후 손가락을 넣어 토하게 해 우리 식구들은 그렇게 불렀다)으로 가던 기억은 아직도 꿈처럼 몽롱한데, 어쨌든 지금 생각해 봐도 저것이 제대로 클 수 있을까란 걱정을 어른들에게 한없이 걱정을 끼쳤던 아이였던 듯하다.
그래서였는지 쓴 약을 꿀꺽 참고 삼키기만 해도, 두드러기에 소금물을 바를 때 울지 않기만 해도 어른들은 나를 칭찬해대기에 바빴다. 말 그대로 어릴 적의 난 칭찬을 먹고 사는 아이였고, 또 후기 산업사회로 접어든 1960년대 후반, 가내수공업 공장부터 직물공장, 철공소 등이 난립해 있던 동네에서 자수성가한 부모님은 표백염색공장을 운영해 집엔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 어른들로 북적거리던 터였다.
어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는가만 더없이 선량했던 부모님은 당신 자식들에게 지극한 사랑을 쏟는 분들이었다. 하루 종일 고된 일과를 보낸 후에도 늘 저녁이면 우리들에게 옛이야기부터 온갖 고사성어(故事成語)들을 재미있게 풀어 들려주시곤 했다. 그 이야기들은 지금까지 거의 잊히지 않는데 생각해 보면 가장 강조하며 들려주셨던 게 격물치지(格物致知) 아니었나 싶다.
물론 그걸 뜻 그대로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식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라, 내겐 칭찬을 아끼지 않아 늘 생글생글 웃으며 어른들께 인사도 잘하고, 집에 손님이 오면 댓돌에 신발을 가지런히 챙기거나 닦게 하는 것으로, 허약함을 핑계로 남들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을까 경계시켰고, 그로 정심을 갖게 하고, 그렇게나마 운동을 시켜 수신하게 만드셨다. 물론 다른 자식들에겐 또 다른 격물치지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지금도 언감생심(焉敢生心) 내가 그 경지를 꿈이라도 꾸겠나마는 설이 다가오니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하도 간절해 떠올려 보는 기억이다.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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