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해지면 지갑 얇아진다" 달력의 경제학

입력 2011-01-17 09:19:39

소상인 홍보용 자취감취…저렴한 탁상용이 대세

'달력을 보면 올 한 해 경기가 보인다.'

해가 끝나고 시작되는 즈음엔 눈먼 달력이 넘쳐난다. 어디를 가나 발에 차이는 게 달력이다.

해가 바뀐 지 몇 달이나 지나고서야 세차를 할라치면 한꺼번에 고향집 아궁이행 신세를 면치 못하는 안타까운 처지였던 달력.

그러나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달력이 귀해진 것.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이 세계 7위 수출 대국이란 금자탑을 쌓았지만 몇몇 재벌 기업이 성장을 견인했을 뿐 서민 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새해 달력 주문량이 줄었고 소상공인들의 홍보 달력도 자취를 감췄다.

달력은 지난 한 해 경제 성적표라고 말한다. 그만큼 달력은 서민 경제와 직결된다.

대구 중구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성진(34) 씨는 요즘 달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새해 첫날 문경 고향 마을에 가족 친지들을 돌며 손수 달력 2부씩 모두 20부를 걸어드렸지만 올해에는 부모님 댁에만 드렸다. 이 씨는 "새해 첫날 하는 연례행사가 부모님과 친지들이 보실 달력을 달아드리는 건데 요즘은 달력 구하기가 수월치 않다"고 말했다.

달력 주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대구 성서산업단지 A인쇄소에 따르면 대형 은행, 공기업 등의 달력 주문량은 변동이 없지만 중소기업에서 주문하는 물량은 150만 부 이상 줄었다.

외식업계의 달력 소비량도 크게 감소했다. 통상 외식업계의 경우 연말부터 새해 달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소비자한테 선택받은 달력 하나면 내년 매출 호조를 기대할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달력은 충성 소비자를 만드는 최고의 마케팅 수단인데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요즘에 달력 마케팅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귀띔했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서민 경제는 달력 유형마저 바꿔놓고 있다. 달력은 크게 벽걸이용, 탁자용, 액자형으로 나뉘는데 요즘은 탁상용이 대세다. 벽걸이용(1천800원)보다 탁자용(700원대) 가격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드문드문 주문량이 들어왔던 고가의 액자용 제작 주문은 끊어진 지 오래.

홍경태 동아종합인쇄소 상무는 "기존 벽걸이와 탁자용 달력의 시장 점유율이 6대 4 정도였는데 지금은 탁자용이 추월하고 있다"고 했다. 달력이 귀하신 몸이 된 데는 2만여 가구의 미분양 물량을 안고 있는 지역 건설 경기와도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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