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랑 산사람] 함백산 눈꽃 트레킹

입력 2011-01-06 14:21:54

백두대간 설산 파노라마 굽어보며 새해 에너지 충전

은빛 설산에서 다지는 새해의 각오. 신년 첫 출발을 내딛는 코스로 설산(雪山)만한 게 있을까. 물론 새해 첫 아침을 밝히는 일출을 보면서 포부를 다질 수도 있겠고, 겨울바다의 하얀 포말에 지난해 묵은 상념들을 씻어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1년의 첫 마음을 품는 곳이 산 정상이라면, 더구나 설원위 순백의 캔버스라면 그 각오와 감동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관령과 태백산 이어주는 백두대간 가교

설악, 오대산, 대관령에서 뻗어온 백두대간이 남하하다가 싸리재를 넘자마자 산맥을 불끈 일으킨 곳, 바로 함백산(1,572m)이다. 만항재와 화방재를 경계로 태백산과 이웃하고 있지만 태백산의 위용에 가려 주봉을 내준 탓에 서자(庶子)처럼 존재감이 흐릿하다. 맏형자리를 내준 것은 산맥의 중심에 살짝 비켜선 지리적 조건과 천제단을 품은 태백산의 상징성에 밀려서이다. 이런 이유로 함백산은 청옥, 두타와 태백산을 이어주는 가교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산행의 시작은 만항재. 산줄기가 남쪽으로 내려오다 태백산으로 솟구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른 곳이다. 이 고개는 414번 지방도로 높이가 1,330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다.

만항재 주변은 전국에서도 유명한 야생화 군락지. 매년 8월이면 산상화원을 이룬 들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탐방객들이 몰려온다.

고갯마루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로 북새통을 이룬다. 새해 첫 주말을 눈 속에서 즐기려는 등산객들의 억센 신발소리와 수다소리가 계곡에 가득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동쪽으로 대한체육회선수촌 태백분원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어느 캠프보다 산소가 희박해 스피드와 체력을 보완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최근 전국 폭설로 모처럼 강원도에는 은백의 설원이 펼쳐졌다. 일행은 하얀 눈을 헤치며 비탈길을 오른다. 만항재가 1,330m이고 정상이 1,572m이니 정상까지는 242m만 오르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대간길이 만만하지는 않다. 눈길을 감상하기엔 좋지만 트레커들에겐 20% 정도 체력부담이 요구된다.

◆나뭇가지마다 순백의 상고대 향연

봄철 연분홍 꽃잎을 곱게 밀어올렸을 철쭉 가지에는 순백의 상고대가 내려앉았다. 길가에 낮게 몸을 움츠린 산죽의 푸른 잎에도 솜털 옷이 달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시선을 던진다. 겨울 산의 트레이드마크 코발트색 하늘이 창공을 멋지게 채색했다. 투명한 빙화(氷花), 코발트색 하늘빛의 환상적 조합에 등산객들은 피로를 잊는다.

등산을 시작한 지 1시간을 조금 넘겨 정상(1,572m)에 도착했다. 산행거리는 2.4km. 서리로 코팅을 해놓은 듯 바짝 얼어붙은 정상석이 일행을 맞는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 바람이 땀을 훔쳐낸다. 이제야 주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강원의 산들이 설원을 따라 사방으로 산 너울을 이루었다. 작은 관목들 너머로 매봉산 풍력발전기가 거친 바람을 토해내고, 철조망 너머로 태백 오투 리조트의 슬로프들이 능선을 따라 멋진 활강라인을 만들었다. 북쪽 대간 길을 따라 은대봉, 싸리재, 금대봉은 멀리서 우람한 근육을 자랑한다.

정상에서 백두대간의 줄기를 품는다. 가슴속 잡념들이 칼바람에 모두 씻겨나가는 듯하다. 이 빈 자리에 대간의 힘찬 에너지를 채운다. 새해에 동력(動力)으로 쓸 참이다.

정상의 송신탑을 둘러친 철조망을 따라 나서면 함백산의 명물 주목 군락지가 펼쳐진다. 덕유산이나 지리산 주목이 규모가 큰 오케스트라급이라면 이곳의 주목은 우아한 아리아 독주에 가깝다. 눈 속나무들의 고독한 울림을 렌즈에 담느라 산꾼들의 셔터도 분주하다.

이제 하산 길로 접어든다. 중함백과 1325봉을 거쳐 안부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적조암, 정암사로 향하는 하산길이다. 내리막길에서도 설탕같이 투명한 상고대의 행렬은 계속된다.

사스레나무와 활엽수림이 우거진 하산길을 한참을 걷노라니 길 옆 잡목엔 상고대의 흔적이 어느새 지워지고 없다. 고도가 400, 500m급으로 낮아진 탓이다.

드디어 414번 지방도로, 여기서 정암사까지는 도보로 20분 거리다. 정암사는 통도사,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와 함께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

선덕여왕 때 대국통까지 올랐던 자장율사는 당에서 진신사리를 모셔와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부처님의 정골을 모신 덕에 정기가 서려 기도에 효험이 있다고 해서 전국의 수행자와 신도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적멸보궁'수마노탑으로 유명한 정암사

정암사의 또 하나 명물은 수마노탑. 마노(瑪瑙)는 석영질 보석의 일종으로 재앙을 예방해주는 보석으로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마노는 7보(七寶) 중 하나로 소중히 여겨졌으며 조선시대에는 풍잠(風簪'망건장식품), 갓끈, 비녀, 가락지, 노리개 등의 장식에 널리 쓰였다.

이름과는 달리 이 탑은 보석과는 무관한 벽돌을 쌓아서 만든 모전석탑의 양식이다. 정선군에서는 최근 두 보물에 대해 가치를 재조명하는 학술행사와 함께 국보 승격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제 버스는 정암사 눈길을 빠져나와 귀가길에 오른다. 눈꽃의 결정을 반사하던 태양도 벌써 서쪽으로 몸을 눕혔다. 그 붉은 기운을 따라 함백산 전체에 붉은 장막이 드리워졌다.

사실 함백산은 백두대간 길에서 태백산보다 상석(上席)이고 높이도 5, 6m나 높다. 그럼에도 주봉을 태백산에 내주고 100대 명산에도 빠져 있다. 이런 핸디캡을 딛고 함백산은 영월 장산, 태백산, 금대봉과 함께 강원도의 눈꽃 산행의 중심축을 이루면서 산악인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일부 등산객들은 눈꽃축제로 소란스런 태백산을 피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지금도 겨울철 눈꽃 산행의 빅5에 이름을 올리고 백두대간의 중심에서 조용히 산꾼들을 맞고 있다. 이름처럼 '크고 밝게' 웃으며.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