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이 땅이 아름다우려면

입력 2011-01-06 10:57:00

새해 벽두 안방을 찾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KBS 신년 특집 '지구 사진작가 얀의 홈(Yann's Home)' 이야기다. 이미 2009년 6월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공개된 영상물이니 새로울 건 없지만 시청자들의 반향은 컸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은 헬리콥터나 열기구를 타고 공중에서 피사체를 조망하는 항공사진으로 유명하다. 흔히 '버즈아이 뷰'(Bird's-Eye View)라 불리는 기법을 활용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영상 미학은 독특하다. 단순하면서도 보는 이의 마음 깊은 곳에서 감동의 전율을 지펴 올리는 그런 힘이 있다. 다른 사진과는 또 다른 울림으로 우리 눈을 사로잡는 그 영상의 힘은 사물에 접근하는 각도를 조금 달리한 데서 출발한다. 사물의 의미와 본질을 남들과 다른 각도에서 찾아내려는 작가의 철학이 사진에 대한 공명과 진폭을 배가시키는 바탕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카메라에 잡힌 피사체들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 경이로움은 우리가 흔히 보지 못했던, 그래서 모르고 지냈던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다. 이는 일상에 파묻혀 지극히 아름다운 것들을 내팽개치고 허비하는 일들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눈높이를 달리하면 이런 묘한 아름다움도 찾아낼 수 있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의 사진은 온갖 사물이 빚어내는 미니멀리즘적 이미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또한 그 이미지에 우리 삶과 현실을 투영시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 한다는 점에서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얀의 홈'을 보고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면 사진과 현실을 치환하는 갖가지 상징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증거다. 그의 사진은 인간과 자연의 모습을 군더더기 없이 보여준다. 광대한 자연과 이 땅 위의 모든 사물을 가감 없이 담아냄으로써 스스로 성찰하도록 유도한다. 그런 점에서 메시지 또한 명료하다.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이지만 그 화두가 삶이든 시간이든 상처든 희망이든 상관없다.

몸을 내려 지평선과 시선을 나란히 놓아보자. 불과 잠시 전 그렇게 아름답게 느꼈던 경이로움은 온데간데없다. 점으로 보였던 현실이 확대돼 우리 눈에 들어온 탓이다. 시퍼렇게 날선 분노와 저주의 아우성이 귀를 찢고, 막말과 탐욕의 정치놀음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사람들은 독선과 아집, 억지임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충돌하고 서로를 조각조각내고 있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으니 아무런 울림도 없다. 이런 땅에서는 민주와 인권, 자유와 정의, 공정의 가치가 아무리 무거워도 갈수록 메말라가고 가벼워질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희망을 말한다. 내 방식대로 하면 모든 게 정리되고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시경(詩經)은 '미움도 탐욕도 없으면 그 무엇이 잘못될 것인가'라고 했다. 세상이 비뚤어지고 증오와 분노의 목소리로 가득한 것은 미움과 탐욕의 두께가 두껍고 깊은 때문이라는 소리다. 이대로 계속 서로를 비틀고 헤집어 파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땅이 탐욕과 아집과 분쟁의 용광로가 되어 녹아내리거나 폭발하기 전에 말이다.

2011년 새해에는 시선을 달리해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밝은 눈을 가져보자. 인간과 자연, 삶과 주변 사물에 대한 눈높이를 조금 더 높이면 '얀의 홈'이 우리에게 들려주려 했던 메시지, '홈'(Home)의 진정한 의미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사진 속에는 아름다움과 상처, 증오와 분노도 한 점일 뿐이다. 세상을 한 점으로 여기고 우리 내면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보다 많아지고 성찰도 깊어질 것이다.

올해 어느 신춘문예에 당선된 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고.

徐琮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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