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1>주민 관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

입력 2011-01-05 09:42:36

중앙집권·분권 '불안한 동거'… 시민 참여 확대가 숙제

지방자치 부활 20주년을 맞아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1991년 초대 대구시의원 개원 당시 시의원들의 모습.
지방자치 부활 20주년을 맞아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1991년 초대 대구시의원 개원 당시 시의원들의 모습.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성년(成年)이 됐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거창한 구호로 부활한 지방자치는 기대 속에 출발했다. 하지만 절반의 지방자치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나이는 성년이지만 그에 걸맞은 자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매일신문은 지방자치 부활 20년을 맞아 대한정치학회, 대구시의회, 경북도의회와 함께 지방자치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지방자치의 고백=저는 올해 20살이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 20세면 어엿한 성년으로 대접을 받습니다. 만 19세 이하 금지인 성인 영화도 이제는 자유롭게,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이름은 지방자치입니다.

저는 20년 전인 1991년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앞서 1952년 지방의회가 구성되면서 지방자치가 시작됐지만 1961년 5·16 쿠데타의 여파로 지방의회가 해산된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됐고, 1991년 선거를 통해 지방의회가 새로 구성되면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여야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부활한 저는 온전한 권한을 부여받지 못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가 아닌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태어난 탓에 아무래도 내용이 빈약한 채로 부활한 것이지요. 지방에 권한을 뺏기기 꺼리는 중앙 정부 차원에서의 견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욱 저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국민의 시선입니다. 처음 부활했을 때는 저에게 큰 기대를 걸었고, 관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저에 대해 국민의 무관심이 커지면서 중앙 정부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태생적인 한계를 씻어내는 데는 국민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가 가장 필요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지방자치는 주민의 관심을 먹고 자라는 나무입니다.

올해 성년임에도 불구하고 저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제가 여러분의 실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적지 않습니다.

◆큰 영향력=제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사례를 들겠습니다.

#1. 최근 두류수영장을 위탁 운영하는 대구시설관리공단 관계자가 대구시의회를 찾았습니다. 두류수영장 요금을 인상을 두고 협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오랫동안 두류수영장 요금을 20% 인상안을 제시했고, 시의회 행정자치위는 이 문제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서민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이유로 인상안 자체를 보류시켰습니다. 시설관리공단의 요금 인상안이 물거품이 된 것이지요.

#2. 대구시교육청은 지난해 수성구를 제외한 대구시내 공·사립 고교 10곳에 270여억원을 들여 기숙사를 짓겠다는 구상을 발표하자 찬반양론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학력 향상을 위한 훌륭한 방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부에서는 "학력 향상에 대한 근거가 없다"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기숙사 건립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이 대구시의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앞서 학원 교습을 오후 10시로 제한하는 조례를 두고도 논란이 벌어졌을 당시 학원 관계자들이 대구시의회 앞에 항의 시위를 했습니다. 기숙사 건립은 계획대로 짓기로 결정됐습니다.

#3. 대구시의회 앞에서 대구FC 사장의 경질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성적이 꼴찌인 데다 시의회 예산심사 과정에서 대구FC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팬들을 중심으로 사장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시의회가 나서주기를 요구하는 시위였습니다.

왜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수영장이나 화장장, 시민문화회관 등의 이용료, 대관료는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시·도의회에서 조례로 결정토록 돼 있습니다. 상·하수도 요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숙사 건립 문제와 학원 시간 제한 예산도 최종적으로 시의회와 도의회에서 결정합니다. 예산 심사와 조례 제정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상 곳곳에서 지방자치는 위력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은 매우 저조합니다. 실제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의 민원 접수 현황을 살펴보면 대구시의회는 2대(1995년 7월~1998년 6월) 243건, 3대(1998년 7월~2002년 6월) 216건, 4대(2002년 7월~2006년 6월) 210건, 5대(2006년 7월~2010년 6월) 416건이 접수됐습니다. 5대를 제외하면 한 해 평균 50여 건의 민원이 접수된 셈이다. 1달에 4건 가량의 민원이 접수됐다는 의미입니다.

경북도의회에 접수된 민원이 이보다 더 적습니다. 7대(2002년 7월~2006년 6월) 152건, 8대(2006년 7월~2010년 6월) 110건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방청 현황도 각 대별로 차이가 있지만 2천~3천 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시·도의회 무용론이 나올 만 합니다.

지방선거 투표율도 점점 더 낮아지는 추세입니다. 95년 제1회 동시지방선거 때 68.4%였지만 98년 52.7%, 2002년 48.9%, 2006년 51.6%, 2010년 54.5%였습니다. 70%를 웃도는 대통령 선거와 비교하면 무관심이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역민들의 중앙집권적 사고와 지방자치의 제도적 한계를 지적합니다. 하세헌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중앙집권적 사고, 지방자치와 분권이 20년 진전없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구경북은 한나라당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별다른 이슈가 없고, 시의회·도의회의 의사 일정을 시 도민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적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도의회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한 해가 되어야 겠습니다.

이창환기자 lc15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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