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반짝반짝 작은 별

입력 2010-12-24 07:10:24

'스트레이트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의절한 형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생의 마지막 만남을 위해 잔디깎이 기계에 몸을 싣고 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컬트영화의 제왕으로 불리면서 기괴한 영화만 찍는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만은 전혀 괴상하지 않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마음을 따뜻이 감싼다. 그 점은 이 감독을 잘 알고 있는 팬들에겐 도리어 낯설고 이상하게 받아들여진다.

1960년대에 미국에서 활동하던 샹그리라스라는 여성 중창단이 있었다. 무대 안팎에서의 불량스러운 이미지로 인기를 끌던 그녀들은 요즘의 걸 그룹과 같은 인기를 누렸다. 이들의 히트곡 가운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Past Present and Future)는 지금도 가끔 심야 라디오 전파를 탄다. 그런데 이 곡은 불량소녀들이 불렀다고 하기엔 너무나 색다른 음악이다. 베토벤 월광 소나타의 선율을 차용해온 멜로디에 한없이 이지적인 가사를 차분한 목소리에 실어 부른다.

어느 미대의 교수로 있는 화가 김지원을 초대하여 전시회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때 이 화가는 흐드러질 것 같은 맨드라미 그림으로 전시 공간을 가득히 채웠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작은 방에 걸어둔 그의 드로잉 작품에 더 끌렸다. 스케일과 검붉은 빛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맨드라미보다 장난스럽게 선과 붓질을 한 작은 그림들에서 작가의 삶을 봤다.

내가 예술가들의 소품에서 얻은 매혹은 그들 각자의 본격적인 대표작들을 감상한 다음에서야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일 거다. 나는 작가들이 어쩌다가 내어놓는 소품에 관하여 서로 다른 두 가지 동기를 추측해본다. 하나는 늘 어렵고 진지한 작업만 하던 예술가가 기분 전환 삼아 해보는 홀가분한 소품이다. 여기엔 '왜 이렇게 머리 아픈 것만 만드나'는 비아냥거림을 '누구나 하는 걸 내가 못해서 안 할까봐'란 식으로 후려치는 골계미가 숨어있다. 다른 하나는 항상 팬들의 인기나 작품 판매에 매달리는 상업적인 예술가들이 한 순간 문득 자신을 돌아보는 고해성사와 같은 작품이다. 물론 쌓아온 것들을 버리진 못하기에 노래 한 곡, 그림 한 점, 얇은 책 한 권으로 표하는 수줍은 예술이다.

그 예술가들은 색다른 작업에 몰입하며 희열을 느꼈을 것이고, 우리 역시 거기서 또 다른 경탄에 빠질 것이다. 영화 '스트레이트 스토리'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밤하늘의 별들처럼, 드세진 않지만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게 예술가들의 소품이다. 크리스마스트리와 네온불빛의 휘황찬란함보다 동방 박사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길잡이해 준 별빛이 가진 의미에 눈길을 돌리고 싶은 성탄 전야다.

윤규홍 문화평론가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