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김장

입력 2010-12-10 07:47:58

딸 넷이 돕는데, 엄마 고함소리 "너거는 입으로 김장하나?"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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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김미화(대구 달서구 송현2동)

다음 주 글감은 '망년회 이렇게…'입니다

♥ "외할머니 김치 맛은 예술!"

네 명의 딸들이 모두 맞벌이라 그동안 딸들의 김장을 혼자 책임져 온 친정 엄마.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 김치 맛에 대해 환상적이야! 예술이야! 한다. 해마다 말로는 "엄마 올해부터는 그만두세요. 각자 알아서 할게요."했지만 속마음은 걱정이 앞섰다. 엄마의 김치 맛에 길들여진 입맛은 그 맛을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기에. 그래서 올해는 그 비법을 전수받기로 하고 네 명의 딸들이 내손으로 김장하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아이들과 함께 농촌체험 겸 소풍 겸 해서 봄부터 고추를 심고 가문 고추밭에 물주기, 고추대 세우기, 한여름날 수건을 머리에 쓰고 고추 따기, 배추·무를 심고 배추밭에 물주고 배추 속이 꽉 차게 끈으로 포기마다 묶어주기, 배추·무 뽑아 절이고 씻기 등 많은 일을 했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정성이 아닌 것이 없었다. 모두들 시간이나 돈으로 따진다면 사 먹는 게 더 편하고 경제적이겠다고 했지만 워낙 일이 많고 힘들어 잠시 넋두리할 뿐 다시 일을 재촉한다. 더욱이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시는 우리 아버지는 엄마와 함께 수십 년 동안 두 분이서 김장을 해오셨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셨을까?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새삼 부모님의 정성과 사랑이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엄마의 총 지휘 하에 꼼꼼히 일러주신 대로 따라하고 검사받느라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게 일하면서도 "우리 엄마 대단하다. 진짜 고생했다"며 떠들고 웃는 딸들의 수다에 "너거는 입으로 일하나? 시끄러워 죽겠다" 하셨지만 "엄마 딸 많이 낳길 잘했지?" 하니 키우느라 고생은 많았지만 만만한 딸들이 넷이나 있으니 "오냐오냐 행복해 죽겠데이." 하며 쿨한 우리 엄마 기분 좋게 맞장구를 치신다.

통 크고 솜씨 좋은 엄마는 한집 사람 앞집, 뒷집 한통씩 듬뿍듬뿍 나누어 담는다. 김장 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재미로 보쌈을 해서 김장김치와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다. 여기저기서 음~ 끝내줘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앉아서 얻어먹을 땐 늘 죄송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내손으로 직접 하니 몸은 힘들어도 꽉 찬 김치통을 보니 말할 수 없이 뿌듯하고 든든하다. 고생한 엄마께 아버지는 금일봉을, 딸들은 이제부터 김장에서 완전 해방하여 젊게 사시라고 엄마 얼굴에 기미와 점을 빼드리기로 하고 각자 성의껏 마음의 선물을 준비했다.

우미현(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 젓갈은 강경까지 가서 직접 구입

지난주 3층 옥상에 직접 가꾼 배추와 소보 마실에서 얻어온 배추 등으로 김장을 했다. 올해는 특히 멀리 강경까지 가서 젓갈을 구입하고 속재료를 미리 준비했다. 속이 꽉 찬 샛노란 속살 깊숙이 빨간 양념 버무림을 가득가득 집어넣었다. 내가 하는 일은 마님(아내)의 김장 버무리기 잔심부름을 하는 돌쇠 역이다. 대략 50포기를 했다. 배추 속살에서 마늘 생강 젓갈 냄새와 더불어 정성이 가득가득 배어난다. 빨간색 고운 빛깔의 양념으로 금방 버무려낸 맛있는 김장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햅쌀로 지은 구수한 밥에 휘둘러 얹어 한 입 가득 먹는 점심은 가히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정성이 가득 담긴 김치를 4통이나 김치통에 넣고도 이웃과 한 접시씩 나누어 먹는 맛은 우리 촌부들의 오래되고 멋들어진 김장 문화 풍습이다.

아내는 먼 외국에 사는 자식을 위해 김장 한 통을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 보내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도 아깝지 않다며 싱긋 웃는다. 가족이라는 의미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튼튼히 지켜나갈 수 있는 내리사랑의 모정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요즈음 김장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새댁들이 많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우리 딸도 김장이며 된장을 담글 줄 모른다고 한다. 친정과 시댁의 신세를 진다고 하니 이를 어찌하나 걱정이 된다. 며칠 후에 두 달 계획으로 영국에 있는 손녀도 만날 겸 유럽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아내는 몇 가지 반찬을 챙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치 재료를 꼭 가져간다고 한다. 세계화 음식 브랜드로 김치를 알리려 한다는 보도를 본 뒤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등 우리나라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재료를 가방 밑에 꼭꼭 챙겨 가서 영국에 있는 며느리에게 김장 담그는 법을 기필코 전수하고 오겠다고 한다. 내일 점심에는 이웃집에서 나눠준 배추김치 한 포기를 쭉쭉 찢어 한입 가득 먹으리라.

오현섭(대구시 동구 신천동)

♥ 내 역할은 항상 맛 감시자?

햇살이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김장 하는 날은 항상 그래야 할 것이다. 김치를 만드는 데 엄청난 정성도 필요하지만 좋은 날씨에 담그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볕이 드는 거실에서 엄마가 김치를 담그면 나는 옆에 앉아 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갓 만들어져 잘 버무려진 김치를 보고 있으면 특유의 향긋하면서도 강렬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엄마를 닮아 방금 만들어진 김치를 좋아하는 나에게 엄마는 배추를 먹기 좋게 찢어 입에 넣어주고 엄마도 한입 먹었다. 그 맛에 반해 엄마한테 한입만 더 달라고 하면 짠 것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며 그만 먹으라고 하고 나는 나대로 더 달라고 졸라댔다.

결국에는 내가 이겼고 그날 저녁에는 다른 반찬 없이 김장김치 하나만으로 밥그릇을 비우고 했다.

최근에도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했다. 고추를 다듬고 배추를 나르고 정말 오랜만에 하는 김장이라 힘도 들었지만 그만큼 또 뿌듯했다.

한때 배추 가격이 엄청 올라 난리가 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배추 가격이 안정되어 올해는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며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

장희지(대구시 북구 고성동3가)

♥ 한식조리사도 흉내 못내는 "엄마표"

우리 식구들은 모두 김치를 잘 먹었다. 맛있기로 소문난 어머니의 김치는 이웃들은 물론 친척들에게까지 인기가 좋았을 뿐 아니라 회사 직원들에게도 인기 최고였기 때문에 김장철이면 우리 집은 다른 집의 두세 배나 많은 양의 김장을 했는데 그래도 다음해 봄이 되기 전에 김장김치가 다 떨어졌었다.

어머니가 처음부터 그렇게 음식을 잘 하신 건 아니었다. 시집오기 전엔 넉넉한 집에서 귀여움만 받고 살았던 어머니는 음식은 전혀 할 줄 모르셨고 동리에서 소문난 음식 솜씨를 가지고 계셨던 우리 할머니는 물론 총각 때 남대문에서 칼국수 포장마차를 하셨던 아버지보다도 음식을 못하셔서 항상 음식 타박을 들었다.

그 해 김장철에 어머니는 배추 50여 포기와 총각무 10여 단을 집안에 들여놓으셨다. 어머니는 어딘가를 다녀오시느라고 늦을 것 같다고 나와 둘째에게 배추랑 무를 다듬어서 좀 절여 두라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김장 담그는 일을 도와드렸기에 그 정도는 문제없이 해내리라 믿으셨기에 우리에게 시키셨다.

나는 일단 배추 뿌리부터 잘라내고 겉면의 상처가 많이 난 배춧잎을 제거하고 다듬었다. 그런데 겉잎을 떼어내서 다듬긴 했어도 흙이 많이 묻어있고 어딘지 깔끔해 보이지 않는 배추랑 무 상태가 일을 덜 한 것 같아서 퇴근한 둘째와 힘을 합쳐 배추를 열심히 씻었다. 세 번 정도 씻고 나니 깨끗해졌다. 족히 세 시간은 걸렸다. 배추 50포기랑 무 10여단을 그렇게 하려니 정말 힘들었다.

밤에 집에 오신 어머니는 우리 형제를 보시고 특유의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커다랗게 한참 웃으셨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원래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는 것이라며 "우리 아들내미들이 이리 애써서 씻어서 올해는 정말 깨끗한 김치 먹겠네" 하셨다.

옆에 있던 둘째가 궁시렁거렸다. "형이 이렇게 씻어야 하는 거라면서요? 에이씨~ 괜히 엄청 고생했네."

지금 어머니는 하늘에 가 안 계시고 어머니가 담가 주셨던 김치도 다 떨어졌다. 한식조리사 경력 10년이 다 돼가는 셋째가 어머니 흉내를 내서 김치를 담갔다. 아무래도 맛이 이상했다. 어머니의 그 매콤하면서도 짭조름하고 시원하면서도 담백했던 김치 맛을 재현하기는 너무 힘들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가 더 그리워진다.

전병태(대구 달성군 다사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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