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시작된 구세군 모금활동, 본지 기자 체험기
"10원짜리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이 우리 사회의 체온을 올립니다."
'땡그랑 땡그랑'. 구세군 대구·경북 자선냄비 모금이 8일 시작됐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가 구세군 모금 활동에도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사랑의 종소리는 울려퍼지고 있다.
묵묵히 사랑의 체온을 올리고 있는 구세군 자원봉사자들을 찾아 첫날 모금 활동을 함께했다.
이날 오후 2시 대구 중구 동성로 5길. 빨간 자선냄비가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평일 오후치고는 제법 인파가 많았다. 기자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붉은 점퍼를 입고 사랑의 종을 흔들었다. 종소리와 함께 구세군 사관은 마이크를 잡고 모금활동을 시작했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자선하고 가세요." 구세군 사관이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10분이 넘도록 자선냄비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한 청소년이 조용히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동전들을 냄비에 넣자 사관은 "학생, 고마워요. 복 받을 거예요"라며 오히려 반겼다. 그제야 지나는 사람들이 자선냄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최정희(64·여) 씨는 "구세군 봉사를 하다 보면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운다"며 "적은 돈이지만 남을 돕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고 웃었다.
한 시간 뒤 기자는 사랑의 종을 내려 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지나는 행인에게 말하는 것이 낯간지러웠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원봉사의 어려움이 또다시 피부에 와 닿았다.
"여러분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작은 마음을 담아 불우한 이웃을 돕고 행복한 한 해 마무리하십시오."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을 겨우 내뱉었지만 사람들은 수첩을 꺼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자선냄비를 외면하듯 지나쳤다.
구세군 박종석 사관은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냄비에 넣고 가시는 분들"이라며 "이런 분들은 나중에라도 꼭 기부하신다"고 웃었다. 때마침 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만원짜리를 냄비에 넣었다. 어디서 돈이 났느냐고 물었더니 "용돈 모아둔 것인데 오늘 그냥 기부하려고요" 하며 수줍게 말하고선 엄마에게 깡충깡충 뛰어갔다. 뒤이어 정승훈(32) 씨가 기부하며 "고생이 많습니다"고 말을 건네자 기운이 났다.
오후 4시가 넘어가면서 자선냄비에 서서히 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졌다. 주변 노숙자까지 주머니에서 구겨진 천원짜리 한 장을 꺼내 냄비에 넣었고, 퀵서비스 직원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두고 냄비에 조심스레 돈을 넣었다. 현금이 없는 청소년들은 교통카드로도 기부했다.
이수향(17·여) 양은 "기부를 하고 싶었는데 현금이 없었다. 교통카드로도 할 수 있다기에 망설임 없이 기부했다"며 "작은 돈이지만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니 아깝지 않다"고 흐뭇해했다.
오후 5시가 넘으면서 날씨가 점점 추워졌다. 제자리에서 발을 굴리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추위를 몰아냈다. 자원봉사자 박성혁(31) 씨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한데 해가 갈수록 봉사자가 줄고 있다"며 "따뜻한 온정의 손길이 자원봉사로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오후 6시.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더는 모금활동을 할 수 없었다. 다음날을 기대하며 이날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활동은 막을 내렸다. 주승찬 사관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건으로 기부 열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82년째 모금을 하고 있는 우리 구세군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모금목표액을 높이 잡았다"며 "한푼 한푼 작은 돈이라도 좋은 곳에 쓰이길 바라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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