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히틀러의 아이들 /수전 캠벨 바톨레티/지식의 풍경

입력 2010-12-02 07:12:45

소년들은 어떻게 전쟁에 동원되는가?

남북관계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스무 살 빛나는 젊음이 북한의 대포에 맞아 쓰러지고, 죄없는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에 질세라 우리 땅 서해에서는 미국의 신형 무기가 동원되어 대규모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의 코앞에서 벌어지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중국이 초긴장 상태일 것은 뻔한 노릇. 속절없이 강대국들의 전쟁터로 국토를 고스란히 내줬던 조선말의 부끄러운 역사를 백 년도 넘어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역사에서 정녕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인가?

수전 캠벨 바톨레티가 쓴 『히틀러의 아이들』을 읽었다. 이것은 1933년에서 1945년까지 히틀러를 추종했던 어린이와 십대, 그리고 국가사회주의(나치)당에 대한 이야기다. 이 12년간은 바로 역사와 세계를 영원히 바꿔 버린 제3제국(히틀러 치하의 독일)의 시기다. 이 책은 히틀러청소년단에 가입하고 그것을 명예롭게 여긴 수백만 소년'소녀들의 얘기다. 독일이 허약하고 불안정한 정부, 높은 실업률, 광범위한 빈곤으로 신음하던 시기에 나치당은 위대한 독일의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며 젊은이들을 히틀러청소년단으로 끌어들였다. 나치당에 대한 정보를 전파하던 열다섯 살 된 소년 헤르베르트를 비롯해 열네 명의 히틀러청소년단 단원들이 길거리 싸움에서 죽었다. 그 가운데에는 17세 소녀도 있었다(한편 그런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청소년 공산당원들도 줄잡아 열 명 이상은 되었다).

당시 살해된 가장 어린 희생자였기에 나치는 헤르베르트를 끄집어내 부각시켰다. 수천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헤르베르트 노르쿠스에 자극받아 이 운동에 이끌려 들어왔다. 부모가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히틀러의 라디오 연설에 감동받은 소녀 멜리타 마슈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느끼고 독일소녀동맹에 가입했다. 그녀는 훗날 당시에는 실업과 빈곤을 없앨 것이며, 독일을 재통합하겠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그 무렵 히틀러는 독일의 유태인들을 '기생충'으로 간주하면서 독일 내 모든 공적인 활동에서 몰아내려고 하던 참이었다.

1936년 4월 20일 월요일, 아돌프 히틀러의 생일인 이날 독일 전역에 걸쳐 횃불 의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도시와 마을의 커다란 홀과 대형 성곽들마다 횃불과 깃발이 장식됐다. 10세에서 14세에 이르는 소년과 소녀들이 각각 소년단과 소녀단 가입을 위한 선서를 하는 날이었다. 소년'소녀들은 인종과 정치에 대한 나치의 사고방식을 습득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필기시험에 통과해야 했고, 자신의 인종적 배경도 증명해야 했다. '아리안' 혈통이라는 것이 증명된 건강한 소년'소녀들만 가입이 허락됐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종'이 의미 없는 개념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지만 나치는 아리안족을 유대계와 피가 섞이지 않은 북방 게르만계 또는 코카서스 사람으로 정의했다. 나치는 아리안족이야말로 지배자 민족이라 간주했고, 금발과 푸른 눈을 '순혈' 아리안족의 지표로 삼았다. 히틀러청소년단은 아리안족이야말로 모든 종족들보다 우월하다고 배웠다. 1939년 히틀러청소년단에 소속된 독일 소년'소녀들의 수는 무려 700만 명을 넘었다.

히틀러청소년단이 모두 히틀러에게 복종만 했던 것은 아니다. 소피 숄이나 잉게 숄 남매같이 히틀러청소년단에서 활동하다가 저항에 나서게 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나치에 저항하였고, 끝내 처형당했다. 1945년 소련이 베를린을 점령했고 아돌프 히틀러는 죽었다. 뮌헨에서 마지막 항전을 준비하던 용맹무쌍한 히틀러청소년단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히틀러의 엄청난 범죄에 동조하여 수백만 명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마침내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을 때는 평생에 걸쳐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정치가들의 그릇된 야심으로 일어나는 전쟁의 희생자가 되는 것은 결국 죄 없는 아이들과 평범한 사람들이다. 누가 이 땅에서 또다시 전쟁을 부추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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