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적응 힘들땐 축구공 뻥~" 남미 다문화 축구팀

입력 2010-11-15 09:58:30

14일 오후 청도 공설운동장에서 대구 중구 생활체육회 남미 다문화 축구팀이 경기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4일 오후 청도 공설운동장에서 대구 중구 생활체육회 남미 다문화 축구팀이 경기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파세(Pase·패스) 파세! 꼬레(Correr·달려) 꼬레!"

14일 오후 2시 30분 경북 청도군 화양읍 청도공설운동장.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경기장 바로 옆에 선 관중들은 연방 응원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22명의 선수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경기장 안에서 한국인은 심판 단 한 명뿐이었다. 축구 선수들은 모두 고국을 떠나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의 가장들이었다.

이날 경기는 '남미 다문화 축구팀'과 '베트남 노동자 축구팀'의 친선경기. 이들은 공을 주고받으며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고 고국에 대한 향수를 서로 달래며 90분 동안 축구를 즐겼다.

남미 축구팀은 경기 한 시간 전부터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관중석 앞에서 페루식 음식을 만드는 등 파티를 즐기는 분위기였다.

한국에 온 지 11년째인 조니 레이노(45·페루) 씨는 7년 전 한국 여성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뤘다. 팀의 주장격인 조니 씨는 "다문화 팀을 만들면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인들과 경기도 할 수 있고 친목을 도모할 수 있다"며 "일요일마다 모여서 연습도 하고 뒤풀이도 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 문화가 익숙해졌다"고 웃었다.

경기장 한쪽에서 몸을 풀고 있는 남미 축구팀은 그동안 한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내온 듯 만날 때마다 껴안으며 안부를 묻곤 했다. 특히 찰리(39·페루) 씨가 도착했을 때는 모두 '마라도나'라고 불렀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라도나를 닮았기 때문. 주변 친구들은 "마라도나처럼 축구를 잘할 것 같아 팀에 들어오라고 꼬드겼는데 얼굴에 속았다"고 놀렸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빙 둘러서 손을 모아 '파이팅'(Fighting)을 외치는 모습은 한국 조기 축구팀을 보는 듯했다.

이들은 축구를 할 장소를 구하기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외국인이다 보니 축구장을 빌리기가 어려웠던 것. 대구 중구생활체육회 이태식 씨는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체육회에서 축구 모임을 돕기 위해 연습 장소와 유니폼을 제공했다"며 "6개월 전 처음 지원할 때만 해도 10명이 안 되던 팀원들이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지금은 100명이 넘었다"고 말했다. 축구 장소가 생겼다는 입소문에 여러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가정 가장들까지 참가하기 시작한 것.

이날 경기는 역전과 역전이 반복되며 6대 6으로 끝이 났다. 승패를 결정짓기 위한 승부차기 끝에 결국 남미 다문화 팀이 졌다.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마지막 동점까지 이끌어낸 조니 씨는 "졌지만 정말 재미난 경기였다"며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지금처럼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후리오 세사르(33·페루) 씨는 "축구를 시작하면서 한국어가 많이 늘었다"며 "언어가 통하지 않아 어색했던 사람들도 축구 한 경기 뛰면 이내 친해진다"고 즐거워했다.

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중구 풋살연합회 최태원 회장은 "축구가 언어와 문화 장벽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팀원들이 축구를 통해 서로 어려운 점을 도울 수 있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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