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무시당하는 지방 문화

입력 2010-10-06 11:01:57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기 속에 진행되고 있다. 인간의 목소리로 심금을 울리는 아리아를 토해 놓는 이 매력적인 예술 장르의 축제는 그러나 최근 어두운 미래에 봉착했다. 정부가 내년부터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지원 예산을 무 자르듯 잘라버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올봄에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고 내년 준비에 들어가 있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게 됐다. 이 두 문화 행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해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된서리를 맞게 돼 대구는 물론 국내외 공연 문화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안동탈춤페스티벌도 예산 지원이 삭감될 상황에 놓였다.

지난달 초 정부의 내년 재정 운용 방침이 밝혀지면서 먹구름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4대강 살리기 등 대형 인프라 사업으로 내년도 세수 부족을 예상한 정부가 재정을 긴축 운용키로 하면서 뮤지컬페스티벌과 오페라축제의 예산 지원액이 각각 최대 3억 원으로 크게 줄어들게 된 것이다. 뮤지컬페스티벌과 오페라축제는 올해 정부로부터 각각 전체 사업비의 절반인 11억 원과 8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이 방침대로라면 내년에는 3분의 1 정도로 지원 규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 두 문화 축제는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예산으로 꾸려나가고 있어 지원을 더해 주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예상 못 한 난관에 부닥친 셈이다.

더욱 황당한 것은 뮤지컬페스티벌과 오페라축제의 예산 지원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정부 예산 지원을 바라는 전국 각 기초'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행사와 경쟁, 심사를 통해 지원할 만하다는 인정을 받은 후에야 쥐꼬리만 한 예산이라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화적 전통과 자부심이 강한 대구, 한때 3대 도시였다가 미끄러졌지만 4대 도시 대구, 행정 체계에서 최상급인 250만 명의 광역시 대구의 뮤지컬페스티벌과 오페라축제를 중소 시'군의 특산물 축제와 동급에 놓고 경쟁토록 하는 굴욕을 안겨주고 있다.

무수히 많은 지방의 각 축제들이 외형에 치중하느라 낭비적 측면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어 개선해야 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대도시의 주요 문화 정책과 관련된 행사를 도매금으로 넘겨 재단해 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시각 자체도 중앙 우월적 시각의 편협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관료들은 지방 대도시가 문화 발전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며 문화 행사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지, 중소 도시의 특산물 축제는 그 지방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최대한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 예산을 아무리 긴축해야 할 상황이라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그렇듯 위협적으로 두부 자르듯 하는 것은 기분까지 나쁘게 함으로써 하지하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다른 측면에서도 그렇다. '공모제'는 또 무엇인가. 각종 문화 관련 예산 지원 요청을 정리하기 위해 새롭게 채택한 방법인 모양인데 많지도 않은 떡을 시험을 통과한 사람에게 쪼개서 나눠주는 것 같아 모양새가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한 방침과 입장에는 칼자루를 쥔 자의 오만함이 느껴진다. 마치 시혜를 베풀듯 뭔가를 나눠주는 자세 말이다. 중앙정부의 관료들은 서울 사람이거나 지방 출신 서울 사람일 텐데 지방을 모르고 무시하고 알려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이 무지의 소산이든 편협한 우월의식이든 매우 심각하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지방의 피해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중앙 과점이 지방의 피해의식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대구는 문화적 전통이 강해 자부심을 느낄 만한 도시이다. 구한말부터 서화와 근대 서양 미술이 꽃피었고 박태준, 현제명은 여명기의 한국 근대 음악을 빛냈다. 1970년대 현대미술 운동이 일어난 곳도 바로 대구이다.

어찌 됐든 예산 축소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구시 관계자들이 요로에서 뛰고 있으나 상황이 쉽지 않다는 소리가 들린다. 예산 심의에 나설 대구 출신 국회의원들이 살펴야 할 형편이다. 대구시는 민간 기업 후원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김지석(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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