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는 객지에서 밀려난 백수들이
할 수 없이 피곤한 발길을 되돌리는 것이
이를테면 허울 좋은 귀향이다
내 고향은 영광 백수
나는 아직도 몸은 백리 밖에 묶어두고
영광스럽게도 그 이름만 백수로 돌아왔다
이 눈치 저 눈치에 지치면
아내가 하는 일거리를 거든다고 설치다가
걸핏하면 퉁사리를 먹기 일쑤였다
아내는 개띠고 나는 소위 호랑이인데도
백수의 왕이 그 모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도 어엿한 직장인
이름 하여 간병인이다 어머니가
사십구일 째 중환자실에 투숙 중이셔서
나는 아내도 누이도 조카들도 내쫓다시피
호랑이처럼 어머니 곁을 지킨다
행여 이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서이다
하여, 어머니가 한사코 오래 사셔야
나도 그만큼 떳떳이 자리보전할 터인데
어머니는 그도 모른 채 코만 골고 계시고
내 고향은 눈물 캄캄한 백수이다
천 년 전, 철학자 생 빅토르 후고는 "자신의 고향을 달콤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직 주둥이가 노란 미숙아"라고 했다. 국수주의자를 넘어 세계주의자가 되자는 일갈인데, 고향을 소중히 여기는 한국 정서로 따지자면 다소 과격한 표현이겠다. 그렇더라도 어떤 이들에게는 고향이 마냥 달콤한 곳만은 아니며, 마음의 빚으로 남은 '트라우마'의 장소이기도 할 것이다. "고단하고 멀고 아름다웠다"라는 시인 유홍준의 말로 고향에 대한 애증을 아우를 수 있으리라.
이 시는 고향과 아내와 어머니라는 그 아리고 흔한 명사들로 꾸며졌지만, '허울 좋은 귀향'이라는 진솔하면서도 위트 섞인 고백을 통해 그나마 덜 슬프게 잔잔한 공감을 불러준다. 시인은 영광과 백수, 개와 호랑이, 아내와 나, 어머니와 나의 거리를 역시 허울 좋은 명분으로 오가며 애써 명랑하게 버틴다. 어머니는 아들이 '캄캄한 백수'에서 방황하지 않기를 혼몽 중에도 기도할 것이다.
시인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험지 경북' 찾은 이재명 "제가 뭘 그리 잘못을…온갖 모함 당해"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