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풀풀 인사청문회… '흠' 없는 사람들의 생각은

입력 2010-10-02 08:34:05

'다 그렇지 뭐' vs '그래도 정도가 있지'

'흠' 없는 사람은 없다. 이런 말도 있다. '흠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누구나 흠이 있으며, 그게 없다면 이상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자 欠(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물건의 이지러지거나 깨어지거나 상한 자국, 어떤 사물의 모자라거나 잘못된 부분'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람의 성격이나 언행의 부족함을 나타낼 때도 이 단어를 쓴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가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낙마한 데 이어 김황식 후보자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낙마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를 두고 여당에선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야당에선 '흠도 정도가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이 때문인지 세간에는 '흠 없는 사람'이 화제다.

한 코미디 프로에서 이런 대사도 히트를 쳤다. "못생기고 돈 많은 여자 VS 예쁘고 돈 없는 여자, 누가 좋으냐?"고 묻자, 한 개그맨이 한참을 고민하다 "얼마나 못생겼는데?"라고 반문했다. 뜬금없는 얘기 같지만 이 유머에서 못생긴 건 정치인의 흠이고, 돈 많은 것은 그 인물의 능력에 비유될 수 있어, '흠과 능력'이 화두가 된 현 정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 국회의원들과 구청장 그리고 범인(凡人)들이 생각하는 흠에 대해 알아봤다.

◆'흠 잡으려면 누구나 다 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본인 역시 해당되는 일을 저지르고 청문회 대상이 된 후보의 흠이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물론 소속 당의 입장이 있고, 청문위원 신분으로 총리나 장관 등의 후보자를 매섭게 몰아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비슷한 처지의 정치인들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김태호 전 지사의 낙마에 이어 김황식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지역의 주성영 의원은 야당의 의도적인 흠집 내기이자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주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황식 후보자는 이미 노무현 정부 때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받았는데 인제 와서 새삼 더 까다로운 잣대를 들이대며 낙마시키려는 것은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며 "야당도 너무 정략적"이라고 지적했다.

대구의 한 구청장도 "능력 자체가 더 중요하지 사생활에 가까운 일들을 들춰내, 도덕성이라는 잣대로 들이대거나 병역 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문제"라며 "스스로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무책임하게 폭로하고 끌어내리려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원 이주원(35·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씨도 "프랑스를 한 번 보라. 사르코지 대통령이나 브루니 영부인이 한국 정치풍토에서라면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을 수 있겠느냐"며 "관용, 관대 즉 불어로 똘레랑스(tolerance) 정신이 정치권과 일반인에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거짓말 왜? 선(線)은 분명히 있다'

'흠만 없으면 된다'는 건 결코 아니다. 능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쪽방을 사고, 뇌물 먹은 인사가 고위 공직자가 돼도 괜찮다는 얘기는 결코 아닌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의식이 많이 성장해 사생활과 용납될 정도의 잘못은 구분할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을 보자.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간 나오토 총리는 정치자금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의 약점을 잘 파고들었다. '클린 정치를 구현하자'는 구호로 대부분의 언론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여론을 등에 업은 간 총리는 민심에 민감한 지방의회 의원, 당원들의 표에서 격차를 벌렸다.

우리나라의 민주당도 도덕성 잣대에서는 일본 민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정세균 전 대표는 인사청문회에 대해 "모두 군자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손가락질받는 후보는 없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흠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지 참으로 답답하고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사청문회가 열리게 되면 사실 여권이 걱정해야 하는데 야당이 또 도덕성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라며 에둘러 이명박 정부에 용납 안 될 흠을 가진 고위 인사들이 너무 많음을 지적했다.

지역 출신의 민주당 한 의원은 "청문회에서 모범적인 공직자상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분명한 것은 현 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각종 불법과 탈법, 거짓말 등 가장 부적격하고 도덕적인 문제가 많은 총리 및 장관 후보자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 의원은 또 "현 정부는 '공정사회'나 '흠 없는 사람'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까지 했다. 야당 소속의 지역 한 구의원도 "국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등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법과 윤리에 둔감한 이런 사람이 공직에 계속 나가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겠는가"고 꼬집었다.

한국적인 정치문화에서는 아직도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반복되는 지도자들의 각종 비리 의혹에 지쳤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65%가 능력과 무관하게 위장전입자는 장관이 되기에 부적절하다고 했다. 또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취업, 병역기피, 말 바꾸기 등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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