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는 일본 작가 데라구치 히사코 씨

입력 2010-09-15 07:06:21

한국 영화·드라마 폭력과 불륜 많아 평화로운 생각 절제된 정신문화 중요

데라구치 씨는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동화와 노랫말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데라구치 씨는 아름답고 생명력 넘치는 동화와 노랫말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한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일본 작가 데라구치 히사코(寺口緋紗子) 씨는 오사카 출신으로 1996년부터 한국에 살고 있다. 그녀는 종교를 매개로 한국 남자와 결혼했는데 '화합, 통일, 평화'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하나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할 때 평화로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데라구치 씨는 일본에서 노랫말을 짓는 작사가로, 또 동화 작가로 활동했다. 오빠가 기타리스트로 아마추어 가수였고 그녀는 22개 곡을 작사했다. 작사나 동화 짓기로 생계를 이어가기는 어려워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양장점도 했고, 식당도 했다. 한국에 온 뒤로도 분식집을 하면서 동화를 짓고, 노랫말을 지어왔다. 근래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분식점을 그만두었다.

데라구치 씨의 동화와 노랫말은 모두 평화, 생명, 행복, 희망, 자연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들이다.

1947년생인 그녀는 이른바 '패전 세대'에 속한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직후에 태어난 그녀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0세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12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활은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패전 뒤라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모두 흉흉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역시 모두 복수, 원한, 폭력 등을 주제로 한 끔찍한 내용이었다.

"어린이들에게 밝은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좀 더 맑고 밝고 푸근한 이야기를 들으며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여유로워지고, 더 포근하지 않을까요?"

그녀가 꿈과 행복이 넘치는 동화, 아름다운 이야기로 된 노랫말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그녀는 한때 소설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소설에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함께 등장해야 하는데, 나쁜 사람을 묘사하기 싫어서 소설가의 길을 포기했다.

"일본 문학과 TV 드라마에는 폭력, 불륜, 가정파괴, 기괴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문학과 TV 드라마가 세태를 반영하는 면도 있지만, 반대로 문학과 TV 드라마가 세태를 만들어가는 측면도 강해요. 자꾸 나쁜 이야기, 불행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불륜을 조장해서 가정이 깨지면 아이들이 불행해지고, 불행한 아이들은 나쁜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요. 좋은 이야기, 따뜻한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많이 들어야 사람도 행복해집니다."

데라구치 씨는 요즘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기괴한 이야기, 폭력과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마구 만들어놓고 그것을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말로 포장하는 것이 싫다고 했다.

"한국은 이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었어요. 이럴 때 일수록 절제된 정신문화, 아름답고 평화로운 생각, 이웃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중요해요. 천박하고 폭력적인 문학과 노래가 주류가 되면 사회도 그렇게 변해버립니다."

한국말이 서툰 데라구치 씨는 일본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 작곡가를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작곡한 착하고 평화로운 노랫말들이 아름다운 선율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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