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치료소 110곳…의사 처방전 대상일 만큼 '공신력'
프랑스 온천휴양도시 비시(Vichy)의 물은 로마 시대부터 널리 알려졌다. 나폴레옹 3세가 즐겨 찾은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비시의 물을 프랑스 사람들은 '물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약수·온천수는 물론 강물까지 질이 좋고 풍부해 그렇게 물에 존경심을 표해도 낯간지러울 일은 아니다.
◆물컵 휴대=비시는 물로 시작해 물로 완성된 완벽한 도시다. 그런 만큼 물을 빼고는 비시를 설명할 수 없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물 공원에서는 원수만 6가지가 나온다. 로마시대에 발견된 물, 1844년에 발견된 물, 18세기에 발견된 물 등이 있다. 각각의 물에는 온도와 수소이온농도(PH), 미네랄 양, 그리고 몸 어디에 좋은 물인지 특성이 표기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물을 그냥 맘대로 마시지 않는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수(藥水)로 마신다. 환자들은 하루에 몇 번, 한 번 마실 때 양까지 정확하게 체크해 마신다. 물 컵에 눈금이 표시돼 있다.
비시 사람들은 대개 물컵을 갖고 다닌다. 환자가 아니어도 손가방 속에 물컵 하나 정도는 들어 있다. 그래서 마트에서는 물컵이 잘 팔린다. 목 좋은 곳에 물컵이 전시돼 있다. 밀짚으로 만든 물컵집도 이채롭다. 물컵의 위생을 위해서기도 하고, 손가방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휴대하도록 만든 것이다.
◆휴가철 인구 30% 증가=정갈한 땅 비시에는 2만7천여 명이 산다. 그러나 휴가철인 7~9월이 되면 각지에서 사람이 찾아와 3만5천여 명으로 늘어난다. 인구가 30% 증가하는 셈으로 도시 전역이 북적댄다.
비시에는 물치료소가 2개 있다. 온천욕도 하고 물치료도 하는 복합 스파(SPA)다. 온천휴양도시에 스파가 2개뿐이라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다. 되짚어 보면 비텔도 그랬고 오를레앙도 그랬듯이 물이 좋다고 그들은 마구 개발하지 않는다. 항구적으로 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절제의 미덕이라고 해야겠다. 프랑스 전역에 이런 물치료를 겸한 스파가 110개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물치료소인 돔 물치료소에서는 하루 3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 2개의 물치료소를 이용하는 사람은 연간 2만3천여 명이다. 파리 등 세계적인 관광지와 비교하면 많은 수의 관광객이 아니지만 비시가 높은 지대에 있는 소도시이고, 프랑스에 워낙 유명 관광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돔의 온천은 온도가 68℃ 정도로 뜨겁다. 그래서 온천탕의 물은 다른 물과 섞어 34도로 낮춘다. 미지근한 물을 데워 온천에 사용하는 우리와는 정반대다.
◆물치료는 치료 보조 수단=스파는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지만 물치료는 의사의 처방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물치료는 몸의 조화와 균형을 찾아주는 치료 보조 수단일 뿐이다. 병이 있는 환자가 느긋하게 온천욕을 즐기고 쉬면서 전문적 치료를 하고 약을 먹는 것이다. 돔의 물치료 전문의 게랭 씨는 "물치료는 근원을 치료하는 것"이라며 "약 처방을 통한 치료나 생약 치료의 추가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물치료는 3주가 기본이다. 하루 4회씩 그 사람에 맞는 치료를 한다. 비용은 70만~120만원 정도로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다. 물치료비에다 숙식비 등 부가적 비용을 감안하면 경제적 부담이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물치료도 의료보험에 적용돼 비용 65%는 국가가 부담한다. 환자는 35%만 내면 되고 이마저도 사보험을 들어 충당하는 사람들도 있다.
관절염 예방과 요통 완화를 위한 속성 프로그램도 있다. 노년을 즐기는 은퇴한 환자가 아니라면 3주 동안 휴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6일 코스, 9일 코스, 12일 코스가 있고, 그 정도 짬도 낼 수 없는 환자를 위해 2일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물치료 '효과 있다'=물치료의 효과에 대해 환자들은 만족하는 편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크리스틴 씨는 "수술을 받고 돔에서 5년째 해마다 3주씩 치료받고 있다"며 "2달에 1통씩 약을 먹어야 했지만 비시에서 물치료를 받은 이후 약 복용량을 1년에 1통 정도로 줄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돔 물치료소는 오랜 기간 쌓은 물치료 노하우에 대한 자부심이 배어났다. 돔의 총책임자인 장뤽 시코 씨는 "비시는 간 질환 관련 치료를 오랫동안 해왔다"며 "최근 운영하고 있는 소화기 장애와 대사 조절 부분의 물치료는 돔이 처음으로 시도한 역사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자랑했다. 돔은 이외에도 체질 개선, 관절염 예방과 요통 완화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있다. 대구 동네우물되살리기팀의 일원으로 비시에 동행한 김흥식 계명대 동산병원 소아과 교수는 "다양한 물치료 방법을 인상 깊게 봤다"며 "환자가 휴양과 식이요법을 치료와 병행하면 그 효과가 좋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 빼기 프로그램 인기=비시 사람들은 물속의 미네랄이 피부를 통해 몸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부에 좋은 물이 있다는 것. 비시에 있는 6종류의 물 가운데 2종류가 피부 치료용 물로 쓰인다고 한다.
물 다이어트 프로그램도 인기다. '비시에서 살을 빼자'란 캐치프레이즈가 먹혀들면서 예쁜 몸매를 원하는 젊은 여성들도 비시를 많이 찾게 됐다. 온천욕을 하고, 물속에서 체조를 하고, 고기 대신 채소를 위주로 한 식사를 하고, 산책과 가벼운 조깅을 하는 식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쉬면서 음식을 많이 먹지 않고, 적당한 운동을 한다면 살이 빠지는 것은 물론 만병이 치유되지 않을까.
◆알리에르강은 축복=비시의 도심에는 강이 흐른다. 알리에르강(Allier R.)이다. 루아르강에 루아르계곡이 있다면 알리에르강에는 알리에르계곡이 있다. 알리에르계곡은 화산지대여서 프랑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을 연출한다. 그림 같은 계곡, 푸른 숲, 맑디맑은 하늘이 어우러져 방문자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프랑스 사람들조차 이런 알리에르계곡과 비시를 갖고 있는 오베르뉴(Auvergne) 지방을 '숨겨진 보물'이라고 부른다. 네덜란드나 독일 사람들에게도 오베르뉴는 유명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힌다 한다.
오베르뉴는 유럽의 화산 지대 중 가장 넓다. 3천 년 전 활동을 멈춘 휴화산(休火山) 지대다. 화산 덕분에 이 일대에는 온천이 많이 난다. 특히 애그(Aigues)에서는 무려 820도에 이르는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땅속에서 솟아 나온다. 그처럼 뜨거운 물이 수증기가 아닌 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비시도 그런 오베르뉴 지방의 작은 도시이고, 오베르뉴를 관통하는 알리에르강까지 흐르니 진정 축복받은 도시다. 알리에르 양안은 한강변처럼 잘 정돈돼 있어 조깅이나 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알리에르강 옆에는 널따란 공원이 잘 조성돼 있다. 몇백 살은 돼 보이는 거대한 나무가 우뚝우뚝 서있다. 일본에서 기증한 나무, 미국에서 기증한 나무도 있다.
비시에 물과 무관한 산업은 별로 없다. 물이 좋은 것으로 소문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화장품 비시가 유명하다. 우리나라도 비시 화장품을 수입해 백화점 등지에서 팔고 있다.
도시 전체가 쉬고 즐기는 것에 초첨을 맞춰 살아가는 조용한 온천휴양도시 비시를 이젠 떠나야 한다. 생수 에비앙을 만드는 에비앙시를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 동네우물되살리기팀이 일정을 가장 길게 잡은 곳이 에비앙이다. 풍부하나 낭비하지 않는 그들의 절제미를 곱씹으며 비가 흩뿌리는 비시를 떠났다.
글·사진 최재왕기자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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