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통] 루시퍼 이펙트

입력 2010-08-12 08:17:55

땅 투기에 성공한 졸부 최 사장이 저수지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어 동네 건달 종술에게 관리를 맡긴다. "종술이 자네가 원헌다면 하얀 완장에다가 뻘건 글씨로 감시원이라고 큼지막하게 써서 멋들어지게 채워줄 작정이네." 종술은 적은 급료에 시큰둥하다가 완장을 차게 해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그날부터 종술은 안하무인이 되어 사람들을 괴롭힌다. 고기를 잡던 동창 부자를 폭행하기도 하고, 도시의 남녀들에게 기합을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종술의 팔에 두른 비닐 완장 때문이다. 권력의 자아도취를 비꼴 때 자주 쓰이는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다.

박중훈 주연의 '총잡이'(1995년)는 한 소심한 남자가 우연히 손에 들어온 권총으로 자신감을 얻게 된다는 영화다. 권총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또 폭력적인 힘을 상징하는 장치다. 구로자와 아키라의 '들개'(1949년)는 권총을 잃어버린 형사가 수치심에 미친 듯이 권총을 찾아 헤매는 내용인데 이것도 이런 상징의 연장이다.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이번 주 개봉한 '엑스페리먼트'(사진)다. 직장에서 해고된 트래비스(애드리언 브로디)와 자동차 회사 직원 배리스(포레스트 휘태커)는 한 대학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실험에 참가한다. 광고 전단을 보고 찾아온 20여 명의 참가자들은 인성검사 등을 거쳐 죄수와 간수로 분류된 뒤 2주간 일정으로 역할 게임에 돌입한다. 높은 보수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한 실험자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간수복과 죄수복의 역할은 현실로 굳어지면서 급기야 폭력 사태로 발전한다.

폴 쉐어링 감독의 '엑스페리먼트'는 독일의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이 2001년 만든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인간이 환경의 영향에 얼마나 나약한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소심한 남자는 간수 역할을 맡아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서 악마로 변해가고 평화주의자인 죄수 또한 부당한 폭력이 계속되자 속에서 폭력성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실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에 의해 197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실시한 가상 감옥 실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실험 이후 짐바르도는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 썩은 상자가 사과를 썩게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악마 효과, '루시퍼 이펙트'이다.

종술이 문제가 아니라 완장이 문제고, 총잡이가 문제가 아니라 총이 문제라는 것이다. 2004년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자행된 포로 학대 사건의 원인도 루시퍼 이펙트로 설명되기도 한다.

루시퍼 이펙트는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달리 악의 축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며 자신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라고 강조한다. '권력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인간 됨됨이가 드러난다'는 옛말이나 '있을 때 잘해!'라는 요즘 말이 관통하는 것도 이 지점이다.

김중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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