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이야기] 추억의 등목Ⅰ

입력 2010-07-23 08:57:06

어른들 몰래 친구집 우물가서 "업-퍼 업-퍼"

생활의 발견, 작은 감동 등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이나 모임, 행사, 자랑할 일, 주위의 아름다운 이야기, 그리고 사랑을 고백할 일이 있으시면 원고지 3~5매 정도의 분량으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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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실 곳=매일신문 문화부 살아가는 이야기 담당자 앞, 또는 weekend@msnet.co.kr

지난주 당첨자=박선주(대구 수성구 상동)

다음 주 글감은 '추억의 등목Ⅱ'입니다

♥ 간지럼 태우며 장난도 치고…

40여 년 전, 첩첩산골인 성주군 용암면 사곡리에서는 동네 공동 우물터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그 중에 형편이 조금 나은 친구네는 집 안마당에 펌프가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물을 길어다 먹는 우물가에서 목욕을 하면 몸에서 밀려나온 때가 우물 안으로 들어간다며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도둑고양이처럼 밤에 살금살금 내려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등목을 하곤 했는데 서늘한 물줄기가 등줄기를 타고 목으로 흘러내려 차가움을 참지 못해 '업-퍼 업-퍼' 하다 보면 더위는 싹 가신다.

삼복더위가 아니어도 시골의 아침, 저녁 공기는 선선한 편이지만 한낮의 땡볕은 바늘로 찌르듯 따가운데 어둠이 내릴 때까지 더위를 참을 수 없어 친구 집으로 달려간다. 친구 집은 뒤에 대나무 밭이 있고 조금 높은 데 위치해 있어서 시원한 편이라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무엇보다도 펌프가 있기에 여름이면 그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마당 장독대에 있는 바짝 마른 펌프에 친구가 박 바가지로 '고무 다라이'에 있는 뜨신 물을 두어 바가지 마중물을 부어 펌프질을 해대면 몇 번 피식거리다가 '콸콸콸' 지하에서 물이 올라오는데 다라이에 받을 새 없이 펌프 주둥이에 등을 갖다 대면 친구는 더 신이 나서 펌프질을 해 준다.

등줄기를 타고 가슴으로 내려오는 물 때문에 간지러워서 웃고, 시원해서 웃고, 장난치며 해대는 친구의 펌프질이 하도 웃겨서 웃는다. 이것이 그 옛날 우리들이 즐겼던 등목이었다.

김병욱(대구 북구 태전동)

♥ "장모님이 해주시면 더 시원한데…"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은 여름이 되면 샤워로 더위를 식히는 것도 모자라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결혼 초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을 위해 시골 친정집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뜨끈뜨끈한 씨암탉을 잡아주시는 것도 모자라 우물가 시원한 물로 남편의 등목을 해주곤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장모님 좋아요'를 연방 내뱉으며 애교를 부리기도 하고 그런 남편을 예뻐해 주시는 어머니는 여름이 되면 가족들 중에서도 유난히 땀을 많이 흘리는 남편 걱정을 많이 하신다. 남편은 여름 휴가철이 되면 "다른 데 갈 것 없이 시골 장모님한테 내려가서 푹 쉬다가 오자"고 말한다. 다른 곳에도 가보고 싶다는 아이들을 겨우 달래서 시골 친정집으로 향했다.

결혼 당시만 해도 우물가의 시원한 물로 등목을 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집에는 수돗물이 마당에서 부엌에서 나오니 정말 편해졌다. 어머니는 시원한 수박 한 덩어리를 냉장고에서 꺼내 썰어 놓으시면서 "김서방 먹고 오늘 저녁에는 등목하고 자게" 하신다.

남편은 "장모님이 해주시는 등목이 시원한데" 하며 배시시 웃는다. 저녁을 먹고 남편은 웃통을 훌러덩 벗더니 마당의 수돗가로 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받더니 아이들을 불렀다. 큰아이는 아빠가 해주는 등목을 처음으로 즐기면서 연방 "앗, 차가워. 앗, 차가워"를 외친다.

아이의 등목을 다해주고 이제는 큰아들이 아빠에게 등목을 해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서로서로 등목을 해주는 부자를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이 아이들도 크면 이런 추억을 자식에게 이야기해 주겠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유정(대구 달서구 이곡동)

♥봉사하러 갔다 되레 배운 물의 소중함

지난 여름방학 나는 네팔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그동안 자원봉사 활동을 많이 했지만 해외에서 펼쳐지는 봉사라 설렘과 기대가 컸다. 내가 봉사활동을 한 곳은 네팔의 나라야니도 치트완에 있는 위즈덤 스쿨이었다. 40도가 넘는 뜨거운 열기가 하루하루 계속되었다. 오전의 노력 봉사로 벽화 그리기, 오후의 교육 봉사로 아이들에게 전통 문화를 가르치고 나면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물이 부족한 나라라 나 혼자 마음껏 씻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팀원들과 생각한 지혜는 학교 근처에 있는 우물에 가서 등목을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등목을 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보다가 내가 직접 등목을 하게 되다니 웃음이 나왔다.

네팔에서의 등목은 협동심이 필요했다. 빠른 시간 내에 등목을 가장한 샤워를 끝내고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주인에게 미소와 함께 간단한 네팔어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우물가에서 펌프질로 등목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촛불을 켜놓고 일기를 쓰면서 나는 또 배우고 있었다.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물과 전기의 소중함을.

나 혼자가 아닌 팀원과 함께 어떻게 하면 좀 더 협력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마음으로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추억의 등목을 한 지도 1년이 지났다. 가끔 빗물을 받아 물을 재활용하고 팀원들과 우물가에 함께 걸어갔던 그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내게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나의 열정만큼 뜨거웠던 네팔에서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미소지어 본다.

현선경(청도군 이서면 학산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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