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전, 미국으로 납품될 달력에 문제가 생겨 부랴부랴 도착한 현장엔 상황이 다급했다. 잉크가 두껍게 발려 제본기로 들어갈 때마다 종이에 줄이 죽죽 새겨지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여덟 명이나 되는 인부들이 손을 놓고 있었고, 제품을 부산항으로 싣고 갈 트럭이 한 시간째 대기하고 있었다. 몇 년간의 작은 거래 후 처음으로 미주 본사와 맺은 큰 계약인데다가 제품은 한 달 후 뉴욕의 행사에서 쓰일 예정인지라 선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방법을 찾아 주세요. 몇 시간 안에 꼭 완료해야 합니다." 내가 순진한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보다 못한 내가 기계에 달려들어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실패였다. 내가 기계에 매달려 있는 동안 사람들은 뒷짐을 지고 있어 그곳의 사장이 마치 나인 것처럼 여겨질 지경이었다. 진척이 보이지 않자 화물차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화장솜을 꺼내 종이가 닿는 기계 발에 솜을 대고 그 위로 테이프를 감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두 시간 뒤 화물차는 부산항으로 출발했다.
수십 년 동안 기계를 만진 기술자가 찾지 못한 방법을 내가 찾았다고 말들이 오고 갔지만 그렇게 간단한 방법을 기술자가 찾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기계치인 내가 그런 상황에서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솜을 기계에 붙일 때는 어떤 간절함으로 손이 덜덜 떨리기조차 했다. 그것은 아마 절박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절박했고 그들은 나보다 덜 절박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먹고살 만해져 절박함이 사라진다면 나 또한 뒷짐을 지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를 변명하게 했던 모든 상황들은 내가 그만큼 절박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길, 각고의 노력 끝에 작은 성취를 안고 안일함에 젖어들 때쯤,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주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 속의 겸손함이 걷히고 서서히 자만심이 자리 잡을 때쯤, 겸허함을 찾을 수 있도록 다시 절박한 상황으로 밀어 넣던 신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두려워할 것은 위기가 아니라 절박함이 사라진 안정된 나날일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 절박했던 상황들이 나에게 주었던 믿기 힘든 힘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김계희 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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