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보시오. 우리 딸아이 대학 다니면서 받은 장학금 영수증이랑게. 전면 장학금을 받았다오."
대구 서문시장 동산상가 뒤쪽 순대골목에서 노점상을 하는 배순남(73) 할머니. 배 할머니가 낡은 지갑속에서 꼬깃꼬깃 보관해오다 꺼내 보여준 딸의 장학금 영수증은 2002년이란 날짜가 찍혀 있고 빛이 바래 있었다.
할머니는 이 영수증을 수시로 꺼내보며 흐뭇해 한다. 배 할머니는 시장 바닥에 좌판을 깔고 35년간 순대를 팔며 슬하의 5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키며 훌륭하게 키웠다.
불과 3.3㎡도 채 안되는 좁은 좌판은 할머니의 삶의 공간이자 희망이었다.
할머니의 자녀는 1남 4녀. 장녀 이외숙(45), 차녀 연숙(42), 3녀 은경(39), 4녀 경숙(37) 씨와 막내 아들 상민(33) 씨. 모두 대구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약국·한의원을 운영하거나 병원과 컴퓨터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난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제. 진실한 마음가짐 이것이 나의 생활 신조야. 자식들 한테도 이것 만큼은 철저하게 가르쳤제."
할머니는 5남매를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 숱한 고생을 했다. 할머니는 경남 합천(야로)이 고향이다. 7남매 중 4째로 태어난 할머니는 변변치 못한 집안형편 때문에 20세때 대구로 시집와 시아버지 도움으로 쌀장사를 시작했다. 돈도 그럭저럭 벌었다. 그러던 중 사채놀이에 손을 댔다가 번 돈을 몽땅 날리고 벼랑끝으로 몰렸다.
"그 당시는 정말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제. 속이 상해 몇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울고 울었어."
하지만 할머니는 줄줄이 딸린 자식 생각에 순대 바구니를 이고 서문시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 때가 1970년대 후반이었다.
"워따매~ 처음에는 장소잡기도 어려웠제. 시장을 지키는 '덩치 큰 사람들' 왔다갔다 하지, 하루에 하나도 못 팔고 울며 집으로 돌아올때도 있었지."
그 당시 비포장 거리였던 서문시장 순대골목은 불법 노점상 단속이 심해 구청에서 단속요원이 상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단속을 피해 숨바꼭질 장사를 해야했기 때문에 한눈을 팔다가 잡혀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재수 없는 날이면 단속반에 걸려 즉결심판을 받기도 했다. 1980년 들어 전두환 정권때 서문시장내 순대골목이 합법적으로 노점상을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에서 할머니는 지금까지 장사를 하고 있다.
"당시 추석·설 명절에는 정말 손님이 많이 밀려들었제. 아침에 가져온 순대나 편육은 순식간에 동이 나 돈 버는 재미가 쏠쏠했지."
할머니는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신은 배우지 못했지만 자식들 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기 위해 뒷받침을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린고비처럼 알뜰하게 살림을 살았다. 지금도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오전 9시에 장터에 나와 집에는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들어간다. 몸은 파김치가 되지만 늘 마음 만큼은 즐겁다. 집에 계시는 할아버지와도 결혼한 이후 한번도 싸우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먼저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배려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속내를 비쳤다.
요즘은 서문시장 순대골목 손님이 많이 줄었다. 할머니는 순대가 팔리지 않아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나이 든 손님이 오면 동무처럼 말벗도 되어 주고 한끼 못먹어 배고픈 사람이 오면 국수 한그릇도 말아서 대접한다.
할머니는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아직은 노점상 인생을 접을 수 없어 보인다. 고단하게 달려온 삶이 묻어 있고 애환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비록 이곳이 저잣거리의 낮은 자리이지만 힘 닿는데까지 이 자리를 지켜야제."
순대솥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처럼 할머니의 삶도 구수하게 다가왔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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