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책속 심리] 아버지의 마음/김현승 지음

입력 2010-06-23 07:11:30

애비 마음 헤아리지 못하는 아들놈 '독립'을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하길

'아들놈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온갖 반항을 다하고 짜증도 많네요. 이놈이 그래도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절대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얘기는 안 함) 정직하다고 자위하자니 아버지로서 너무 답답하네요. 감정억제를 잘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상담을 받고도 싶으나 전문가에게 꼬셔 가기가 쉽지 않네요. 넋두리하다 보면 내게 고칠 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성하며 기다려 봅니다. 제게 더 많은 인내심과 관용의 정신이 생기도록 해달라고.' 병원 홈페이지 상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글을 올린 시간을 보니 새벽 2시다.

말없이 자식에 대한 근심과 사랑을 간직한 이 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김현승 시인의 시 은 이런 아버지들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아들이 10대라면, 아마도 아버지는 중년일 것이다. 자신도 약해지고, 심리적으로도 흔들리는 시기를 맞고 있다.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내리막만 남았구나 하는 위기감 속에서도,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가장으로 버티고 있어야 하기에 처음으로 눈물을 진정으로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근심과 두려움으로 술자리에서 남몰래 마음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아버지다.

자녀 문제로 상담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시는 아버지들이 많다. 딸들은 대화도 잘 통하고 공부도 잘하는데, 아들은 기대 수준과 자꾸 멀어지고 거리감이 생기고, 나중에 실망감이 미움으로 돌변한다. '원초적인 한 인간으로서 짐을 져야 했던 아버지의 피어린 고독과 눈물겨운 싸움을 왜 이제 이해하게 됐단 말인가' 하면서 눈물을 보이신다.

소설가 박범신도 아버지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아버지는 되지 않겠다. 깊은 밤 잠든 아이를 들여다보다가, 세상과 싸워나갈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애처로움에 가슴이 사무친다. 애당초 아버지가 안 됐더라면, 이런 무위한 짐은 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내가 잠들어 있거나 술에 취해 있을 때도, 아이들은 작고 큰 상처와 자기 분열로 때론 소리쳐 분을 풀어내고도 싶고, 어떤 땐 목 놓아 울고 싶기도 할 것이다. 아버지로서 의식주 문제는 도울 수 있지만, 아이들의 그런 고통들을 뭘 어떻게 돕는단 말인가.'

나는 답 글을 썼다. '부모자녀 관계만큼 사람을 성숙시키는 인간관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가 독립해 나가려는 자연스런 몸부림입니다. 자녀에게 정성을 쏟는 일과 동시에, 아버님 자신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도 생각할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김미성<마음과 마음정신과 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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