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날리는 우리들의 월드컵

입력 2010-06-21 10:51:27

지역 뇌병변 장애인FC, 축구사랑으로 건강회복

"내가 돌아나가는 사이에 너는 반대편으로 찔러줘야 돼. 그래야 공간이 생기잖아."

단지 즐기는 놀이로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10분도 안 돼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공을 다루는 게 다소 어색했고 뛰는 것도 힘겨워보였다. 다리를 저는 이도 있었고,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뛰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축구화 끈이 풀려도 그 자리에서 묶지 못했다.

그러나 골을 넣은 뒤 환호성을 지를 때는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대구경북 뇌병변 장애인협회 FC(대경뇌협FC) 소속 15명의 선수들을 20일 오후 달서구 용산동 대구직업능력개발센터 운동장에서 만났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불편해 보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어떤 '장애'도 없었다. 지난해 4월 창단해 일주일에 두 차례씩 꼬박꼬박 연습할 만큼 이들의 축구 열정은 뜨거웠다.

그들 나름의 번듯한 전술도 있었고 골을 넣은 뒤의 세레모니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골을 넣은 뒤 환호하는 모습과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골을 넣기까지 시간이 좀더 길 뿐이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정기적으로 대경뇌협FC와 연습경기를 갖고 있는 대구서구여성축구단 이인옥 총무는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하는 모습을 볼 때 장애는 느낄 수 없다"며 "경기력 향상보다는 가슴으로 느끼고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실력은 내세울 것 없지만 이들에게 축구는 삶의 활력소다. 임홍진(37·뇌병변 3급)씨는 "축구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골"이라며 "골을 넣고 나면 마치 새가 돼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2003년 사고로 장애가 생긴 백순흠(30·뇌병변 3급)씨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때 축구를 하면서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이들의 축구 사랑은 수준급의 관전평으로 이어졌다. 김창수(38·뇌병변 2급)씨는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은 압박수비가 제대로 안 먹히면서 리오넬 메시를 잡는 데 실패했다"며 "나이지리아전에서는 그리스전처럼 공수전환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지느냐에 승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대표팀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이들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동료를 보면서 장애를 극복했다"며 "박주영 선수도 아르헨티나전에서의 실수를 딛고 일어선다면 꼭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힘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새벽 경기인 23일 나이지리아전 응원을 위해 월차 휴가를 내고 함께 응원할 계획이다.

대경뇌협FC 김종태 대표는 "우리가 축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운동장 안에서는 '장애'라는 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운동장 밖에서도 그런 벽이 빨리 사라져 일반인과 함께 축구를 즐기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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