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한국 축구대표팀과 아르헨티나와의 B조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린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 앞에서 이색적인 광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남아공 현지 어린이 10여명이 한국의 사물놀이 복장을 갖춰 입고 대형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꽹과리와 북, 장구 등을 메고 정겨운 풍물 한마당을 벌이며 축제 분위기를 만들었다. 경기장을 찾은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이를 구경하는가 하면 사진을 찍으며 함께 즐거워 했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꽹과리를 쳤던 케고노디츠웨이(Kegonoditswe·12)군은 "요하네스버그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라모코카 스타드에서 왔다"며 "그곳에서 태권도를 함께 배우는 친구들과 5년 정도 풍물도 배웠는데 한국 경기가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려 공연을 하러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과 아르헨티나 응원단 간의 경쟁도 경기 못지 않았다. 붉은 악마 등 원정 응원단과 현지 교민 등 한국 응원단 1천500여명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붉게 물들였다. 한국 응원단은 바로 옆에 흰색과 파란색 옷을 입고 국기를 흔드는 아르헨티나 응원단 3천여명에 파묻히는 등 수적으로 압도당했지만 응원전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는 한국이 아르헨티나에 밀려 좀체 공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전반 17분 메시가 프리킥한 공이 문전 혼전에서 박주영의 발에 맞고 들어갔다. 전반 33분 또다시 실점하자 한국 응원단은 잠잠해졌다. 한국 선수들은 주눅이 든 듯 자신감을 잃고 허둥댔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전반 내내 끌려갔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이 골문 앞으로 번개같이 달려들면서 수비보다 한발 앞서 공을 뺏어 벼락같은 슈팅을 날려 추격골을 만들었다. 함성이 쏟아졌고 한국 응원단의 응원도 다시 활기를 띠었다.
후반에는 한국의 공격이 살아났다.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며 대등한 경기를 펼치던 한국은 후반 12분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맞았지만 염기훈의 발을 떠난 공이 골대 옆 그물만 출렁였다. 2대2 동점을 만들어 역전의 발판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그만 날려버렸다. 이날 경기의 승부처여서 더욱 안타까웠다.
한국은 이후 아르헨티나의 맹공격에 시달리다 후반 31분 쐐기골을 내줬다. 분명한 오프사이드였지만 그대로 골로 인정됐고, 승부는 사실상 결정났다. 후반 35분 다시 이과인에게 4번째 골을 허용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골키퍼 정성룡이 신들린 선방을 선보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패색이 짙던 후반 37분 이동국이 박주영을 대신해 교체돼 12년 만에 감격적인 월드컵 본선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이렇다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은 온통 아르헨티나의 흰색과 파란색 물결로 넘쳐났다. 그러나 한국 응원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며 끝까지 열심히 싸워준 태극전사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태권 발차기의 주인공인 허정무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은 이날 경기 내내 벤치에 앉지 않고 20~30m 간격을 두고 나란히 서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마라도나는 한번씩 앉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허 감독이 계속 서 있어서인지 벤치로 가지 않았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