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영혼없는 사회의 교육/ 이계삼 /녹색평론사

입력 2010-06-17 14:03:52

영혼없는 경쟁교육, 자연을 거스르는 개발 성토

"자신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하면서도 남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모두 의심스런 눈초리로 서로 상대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버리고 마음 편히 일하고, 길을 걷고 식사하며 잠을 자면 얼마나 즐거울까!" 루쉰, 「광인일기」

밀양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이계삼 선생의 『영혼없는 사회의 교육』을 읽었다. 한 젊은 교사가 바라보는 우리 교육은 끔찍한 '식인'의 교육이다. 루쉰의 광인일기에 나오는 미치광이의 독백처럼, 우리 모두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지난 100년 동안 이땅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게끔' 맹렬하게 가르쳐 키워 세상에 내놓은 것 이상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교육을 통해서는 열일곱의 나이에 인류의 미래가 농업에 있음을 직감하고, 농민들을 위한 야학을 열고, 계모임과 독서회, 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을 조직하면서 농민들을 위한 교과서 『농민독본』을 저술한 윤봉길 의사(1908~1932)와 같은 인물을 영원히 길러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열여덟의 나이에 일제의 법정에서 일본 법률로 일본인에게 재판받는 것이 부당함을 논변한 유관순 열사(1902~1920)와 같은 치열하고도 조숙한 정신 또한 길러낼 수가 없을 것이다.

윤봉길, 유관순과 같은 영웅적인 인물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의 교육은 17, 18세 무렵이면 사람살이의 이치를 알고 살림살이의 기초를 터득함으로써 자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했던 저 전통사회의 교육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살이의 이치가 되건, 살림의 기본이 되건 지금 우리 교육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스무 살이 아니라 서른 살이 넘어도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 철저히 기생하는 '어른 아이'들만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전교조 밀양지회에서 활동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교육현실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흙으로부터 멀어지는 삶, 자연을 배반하는 삶속에서 황폐해지는 지방의 삶을 가슴 아파한다. '낙동강 칠백 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를 향하여 나간다. 강을 따라 바둑판같은 들이 바다를 향하여 아득하게 열려 있고, 그 넓은 들 품 안에는 무덤무덤의 마을이 여기저기 안겨 있다. 이 강과 이 들과 거기에 사는 인간, 강은 길이길이 흘렀으며 인간도 길이길이 살아왔었다.' 조명희, 『낙동강』(1927년)

낙동강변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사회주의 운동가가 된 박성운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뒤 풀려난다. 그의 고향 사람들이 그를 나룻배에 태워 마을로 돌아온다. 죽음이 임박한 그는 어머니의 젖줄 같은 강물에 손을 적시며 비감해 하고, 곁에 앉은 애인 로사에게 노래를 청한다. 로사는 노래 부른다. "봄마다 봄마다 불어 내리는 낙동강 물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 넘쳐흐르네~ 흐르네~ 에~헤~야"

가뜩이나 시름시름 앓고 있는 강을, 풍경이 되어버린 강을,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조차 잊고 있는 우리의 삶이 4대강 개발이라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강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과, 강을 기반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사람들을 내쫓으며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묻는다. 나날이 황폐해지는 지방의 삶과, 그 속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과 아이들에 대한 진한 애정이 글 곳곳에서 묻어난다. 『녹색평론』 등 각종 매체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것으로,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달구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글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신남희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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