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주방에서 김밥을 싸던 딸아이가 의아한 듯 외쳤다. 분명히 김밥 속 재료를 똑같이 준비했는데 다 싸고 보니 재료 몇 가지가 남았단다. 보나마나 뻔하다. 속이 꽉 찬 김밥에 비해 약간 헐거운 김밥 몇 줄은 맛이 싱거울 터.
6·2지방선거가 있기 전, 나는 속이 꽉 찬 김밥 같은 후보자를 고르기 위해 선거공보를 읽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제각기 환하게 웃는 얼굴과 엄청나게 쏟아낸 공약들을 먼저 살폈다. 여덟 명의 소신 있는 일꾼을 뽑기 위해 심복이 되기를 자처하는 수십 명을 선거공보만 보고 가려내야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인터넷을 뒤지거나 하지 않고도 평소에 지역에서 꾸준히 업적을 쌓은 후보가 여럿이면 유권자인 나는 이런 고민 따윈 안 해도 될 것이란 엉뚱한 기대마저 들었다.
유세 차량은 선거기간 내내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며 오갔다. 지지를 호소하는 후보자들의 반갑잖은 문자 메시지도 계속해서 날아들었다.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소음으로만 여겨졌다. 골목을 점령한 확성기 소리는 주말 오후의 행복한 독서를 끈질기게 방해했다. 참다못한 나는 창문을 넘어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내가 뽑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스팸 문자를 보내는 후보자를 추려보았더니 그들을 다 제하면 남는 후보는 아예 없을 것 같았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식히러 밭에 나갔다. 지난해 굴퉁이가 열린 자리에 풀이 무성했다. 쭈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하다 보니 징그러운 굼벵이 몇 마리가 호미 끝에 걸려나왔다. 무려 칠 년여를 어두운 땅속에서 보낸 뒤 지상으로 올라와 이레 남짓 살다 죽는다는 매미 굼벵이였다. 두엄더미 속에서 맑은 기운을 축적해 매미가 되는 성스러운 일생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서둘러 제자리에 놓고 흙으로 다독인 후 돌아서는데 호박벌 한 마리가 호박꽃에 날아들었다.
호박벌은 몸에 비해 날개가 턱없이 작고 가벼워 공기역학적으로는 떠 있는 것조차 불가능한 꽃벌이다. 자신이 날 수 없는 벌이란 걸 모르는 듯 꿀을 모으겠다는 목적만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주일에 1천600㎞를 날아다닌다. 나는 호박벌의 비행을 보며 희망을 읽었다.
각 지방을 대표하는 인물들은 가려졌다. 제발이지 유권자들이 소신껏 뽑은 일꾼이 겉만 그럴듯하고 속은 덜 여문 굴퉁이가 아니라 오랜 굼벵이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매미이기를, 주민을 위해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호박벌이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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