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운동 좀 하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과거에는 이 말이 뚱뚱하거나 갑자기 살이 찐 이들에게 국한된 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범한 몸매를 가진 이들에게도 통용된다.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몸짱이 최고인 시대다. TV를 보면 식스팩(남성의 복근이 팩을 여섯 개 붙여놓은 것 같다는 의미)과 S라인이 넘쳐난다. 이제 몸 만들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처럼 여겨진다. 특히 노출의 계절을 맞아 몸 만들기 유혹이 거세다.
◆몸 만들기 필수시대
대학생 김준혁(23)씨는 최근 주위 여학생들로부터 잇따라 "운동은 안 하나 봐"라는 비아냥을 듣고 무척 기분이 상했다. 평소 테니스를 치면서 어느 정도 운동을 한다고 생각한 그로서는 충격이었다. 김씨는 건강한 편이지만 키 180㎝에 몸무게 68㎏으로 다소 마른 체격. 김씨는 "요즘은 워낙 몸짱, 몸짱 하니까 근육질 몸이 아니면 여학생들에게 아예 관심의 대상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할 수 없이 최근 동네 헬스장 3개월 회원권을 끊고 본격적인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몸 만들기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트렌드가 됐다. 남자들은 식스팩을 만들기 위해, 여자들은 S라인을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가 난리다. 한 몸짱 만들기 인터넷 카페는 회원 수가 45만명에 이를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고, 책방에서는 각종 몸짱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몸 만들기를 통해 자신의 바뀐 몸 사진을 올리는 것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얼굴 못생긴 건 용서해도 몸 안 되는 건 용서되지 않는다'는 우스개까지 나온다. 또 다른 대학생은 "과거 대학가에 음주문화가 팽배하던 시절에는 학생들 사이에 2, 3일 계속 술 마시고 밤 새운 것이 자랑거리였지만 요즘은 음주를 절제하고 운동을 하면서 자기 관리를 잘하는 학생들이 대접받는다"고 했다.
특히 바캉스철을 앞두고 몸 만드는 분위기는 더욱 뜨겁다. 짐매니아 휘트니스 이태영 과장은 "겨울철에 비해 등록인원이 30%가량 늘었다. 보통 바캉스철을 준비하는 20대들은 5, 6월부터 집중적인 몸 관리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몸 만들기 열풍은 무엇보다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피카소 헬스클럽 김성준 트레이너는 "TV만 켜면 남자연예인들이 웃통을 벗으며 식스팩을 자랑하고 여자연예인은 섹시화보 촬영 등을 하면서 몸매를 드러낸다"며 "젊은 연예인치고 몸짱 아닌 연예인이 없을 정도"라고 했다. 3, 4년 전만 해도 일반인들에게 헬스는 건강 관리가 최대의 목적이었는데 최근 TV에서 몸짱 연예인들이 흔해지면서 헬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취업난이나 경쟁의 심화 등도 이 같은 몸 만들기 열풍을 부채질하고 있다. 취업준비생 이명석(27)씨는 "2개월 전에 한 회사 면접을 봤는데 뚱뚱한 내 몸을 본 면접관에게서 '자기 관리를 안 하는구먼' 하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취업 시장에서는 몸 관리를 안 하면 불이익을 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20대 초반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몸을 만들지만 20대 중반부터는 취업이나 결혼을 위해 몸 만들기를 하는 편이다.
◆몸짱도 과외 열풍
회사원 장철민(35)씨는 조만간 화보를 찍을 예정이다. 3월부터 체계적인 헬스를 통해 복부에 식스팩이 생길 만큼 탄탄한 몸매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장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183㎝라는 큰 키에 마르고 어깨가 좁은 등 체형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운동을 통해 몸짱으로 거듭났다"며 "얼마 전에 물놀이장에 갔는데 나를 보는 주위 시선을 의식하니 무척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어느 해보다 바캉스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장씨가 단기간에 이처럼 큰 효과를 본 것은 다름 아닌 퍼스널 트레이닝(PT) 덕분이다.
몸 만들기가 시대적 흐름이 되면서 단기간에 몸짱이 되기 위해 이른바 '개인과외'를 받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대구에도 2년 전부터 PT를 전문적으로 하는 헬스장이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PT 전문 헬스장이 4곳 정도이며 동네 헬스장도 점차 PT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PT는 개인적으로 하는 헬스와 달리 전문 트레이너와 일대일 맞춤 훈련을 통해 단기간에 몸을 만드는 방식이다. 트레이너가 맞춤형 운동과 식이요법 등을 지도해준다. 이 때문에 일반 헬스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트레이너가 1시간 정도 PT를 해주는 데 보통 5만~10만원 정도이고 1개월 단위로 끊었을 때는 비용이 50만~100만원 정도 한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헬스를 하는 것보다 효과가 탁월해 신청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헬스장에 등록해 몸 만들기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지만 옆에서 전문가가 꾸준히 지도해주면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작용했다. 김 트레이너는 "과거에는 PT 개념이 거의 없었지만 연예인들이 하나같이 PT를 통해 몸짱이 되는 걸 보면서 일반인들도 PT 효과를 인식하게 됐다"고 했다.
◆30대, 주류로 부상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몸 만들기 열풍은 20대 초반에서 주로 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 몸 만들기 열풍의 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회사원 이모(33)씨는 요즘 출근 전에 헬스장에 들러 1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이를 위해 오전 5시 30분만 되면 눈을 떠야 한다. 이씨는 퇴근 후 영어학원에서 회화 공부도 하고 있다. 이같이 꽉 짜인 하루 일과로 피곤함을 많이 느끼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씨는 회사 간부나 상사로부터 "배가 많이 나왔네"라는 지적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 몸 상태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게으른 사람으로 치부돼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본격적인 몸 만들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씨는 "경쟁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자기를 가꾸지 않으면 도태된다"며 "업무 능력뿐 아니라 외모나 패션 등도 중시되는 사회"라고 했다.
여성들 또한 마찬가지. 최근 몇년 사이 30대 주부들의 헬스장 출입이 급증하고 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두고 있는 정모(36)씨도 그 중 한 명이다. 1년 전부터 꾸준히 헬스를 한 덕분에 몸무게가 6㎏ 정도 빠졌는데 특히 뱃살이 크게 사라졌다. 정씨는 "늘씬한 몸매를 통해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을 찾고 싶었다"며 "과거 주부들은 젊어지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만 요즘 주부들은 그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긴다"고 했다. 그녀의 목표는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과시하는 것이다. 짐매니아 휘트니스 문혜영 매니저는 "TV에서 몸짱 아줌마가 이슈가 되면서 주부들의 몸 만들기 바람이 불었다. 요즘은 30대들의 다이어트 바람이 더 거센 것 같다. 특히 30대 주부들은 한 명이 몸짱이 되면 주위 친구들이 모두 몸짱이 되려고 애를 쓴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이 같은 몸 만들기 열풍이 왜곡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트레이너는 "요즘은 자신의 건강보다 남에게 과시하고 보여주기 위한 흐름으로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너무 몸매에만 신경 쓴 나머지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이들도 적잖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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