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넘기면 "부부 같다" 눈총
1990년대생들의 연애는 빠르다. 이성을 소개받기 전에 인터넷에서 사전 탐색을 하고, 첫 만남에서 마음에 들면 사귀자고 당당히 말한다. 애정 표현도 솔직하다. 과거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참지 못하고 곧바로 돌아선다. 그들은 이 과정을 '쿨하게 만나서 쿨하게 헤어진다'고 표현한다. 세태가 급변하면서 젊은이들의 연애관이나 연애 스타일도 크게 바뀌었다. 대학생들의 입을 통해 90년대생들의 연애에 대해 알아봤다.
◆미팅 전 '싸이'는 꼭!
90년대생들은 대학 미팅이 그리 신선하지 않다. 이미 고교 때 어지간히 미팅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곽은별(20·여)씨는 "학과 동기 중 80% 정도는 고교 때 미팅을 최소 한 번 정도 해 봤다. 오히려 고교 때 미팅을 못해 봤다는 동기생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고교 때 미팅을 통해 연애에 이르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 때문에 미팅이나 이성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다.
소개팅을 받을 때는 주선자에게 상대방 싸이월드 주소를 물어보는 것이 보통이다. 만나기 전에 상대방의 '싸이월드'(이하 싸이)에 들어가 외모나 친분관계 등을 훑어보기 위해서다. 박가은(21·여)씨는 "소개팅하기 전에 상대방 싸이에 들어가 1촌 신청을 하고 싸이를 통해 이모저모를 확인한다. 소개팅을 할까 말까 결정하는 건 그 이후"라고 말했다.
싸이를 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면 소개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 싸이를 통해 사전에 상대방의 외모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만나 시간을 허비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용재(23)씨는 "주위 친구 중에는 상대방의 포토샵된 사진만 믿었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있다"며 "관련 싸이 여러 곳에 들어가 상대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는 친구도 많다"고 했다.
◆연애는 스피디하게
남자친구와 고교 때부터 만나 지금까지 3년 동안 사귀고 있는 김지혜(20)씨. 그녀가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부부 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말은 잘 어울린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오래 사귄다고 비꼬는 의미도 담고 있다. 김씨는 "주위에 우리처럼 오래 사귀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90년대생들의 연애기간은 상당히 짧다. 200일만 사귀어도 친구들 사이에 오래 사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대학생 커플들은 보통 100~200일 정도 사귀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소개팅 등을 통해 서로 마음에 들어 만남을 갖게 되면 대체로 1개월 정도의 '썸싱'(something) 기간을 둔다. 썸싱은 본격적으로 사귀기 전에 관계가 진전되는 기간을 의미하는 일종의 은어다.
썸싱 기간에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윤가영(20·여)씨는 "우리 세대는 뜸들이거나 망설이는 게 별로 없다. 마음에 들면 사귀고 서로 안 맞으면 헤어진다"고 했다. 이른바 쿨하게 사귀고 쿨하게 헤어진다. 서로에게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것은 쿨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니다 싶으면 쉽게 돌아서는 것이 90년대생들의 연애관이다.
연애 기간이 짧아지면서 횟수는 많아졌다. 박가은씨는 "아는 친구는 한 학기 만에 남자친구가 3, 4번 바뀌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친구들을 보면 연애 경험이 보통 2, 3번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가면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은 이제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하다. 대학생 커플의 90% 이상이 남자가 군대에 가면 깨진다고 한다. 입대를 한 뒤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신용재씨는 "요즘은 군대 가는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기다려달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는다"며 "군대 가기 전에 사귀는 여자친구는 내 여자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더치페이 기본
지금의 30, 40대가 연애할 때는 남자 쪽에서 희생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서 그랬다.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냈고 간혹 선심 쓰듯 여자가 계산하는 형식이었다. 데이트 비용에 대해 불평을 했다가는 '쪼잔한 X'으로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90년대생들은 다르다. 그들의 연애 문화에는 점차 '더치페이'가 정착되는 추세다. 김지혜씨는 "남자가 영화비를 내면 여자는 커피를 산다. 대체로 남자 대 여자의 데이트 비용이 6대 4 정도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더치페이 문화는 데이트 비용이 너무 비싼 게 큰 원인이다. 박가은씨는 "같이 영화 한편 보고 밥 먹고 좀 놀다 보면 하루 5만원 정도 나간다. 한쪽이 비용을 부담해서는 자주 만나기가 힘들기 때문에 서로 분담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데이트 비용이 비싸다 보니 연애를 할 때부터 경제력을 보는 경향도 생기고 있다. 남자를 선택할 때 자동차가 있는지, 돈을 잘 쓰는 타입인지를 첫 번째로 꼽는 여학생들도 적잖다. 김지혜씨는 "친구들 중에 남자를 소개받을 때 차가 없다고 하면 거절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했다.
◆대담해진 애정 표현
90년대생들은 자신들의 연애를 숨기지 않는다. 과거에는 주위 사람들 모르게 숨어서 연애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친구들이나 부모에게 떳떳하게 밝히고 같이 어울리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만큼 애정 표현도 대담해졌다. 친구들 앞에서 어깨동무하거나 손을 잡는 것은 기본이고 키스도 서슴지 않는다. 박가은씨는 "길거리에서나 건물 앞에서 스스럼없이 키스를 하고, 공공장소에서 남자친구에게 일부러 키스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남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좋으면 곧바로 표현한다.
90년대생들의 개방된 성 의식은 'MT 가자'라는 신종 은어도 만들어냈다. 이때 MT는 학과나 동아리에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대학생 연인 사이에 모텔에 가자는 의미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모텔이 더 이상 몰래 들어갔다 몰래 나오는 남세스러운 공간이 아니다. 모텔은 1만~2만원의 저렴한 비용으로 반나절 동안 사랑은 물론 영화감상과 식사 등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골 코스가 됐다.
◆흔해진 연하남·연상녀
10년 전만 해도 연하남이나 연상녀를 사귀면 주위의 시선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요즘은 연하남이나 연상녀를 사귀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변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과 두세 살 차이 나는 것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모(20·여)씨는 현재 고교 2학년생과 사귀고 있다. 이씨는 개인과외 선생으로 남자친구를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씨는 "남자친구 부모의 허락도 받았다"며 "요즘은 주위에 연하남이 많아 자신만 좋다면 고교생을 사귄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대생들이 동기생이나 후배들은 유치하다며 남자 선배를 좋아하던 예전 연애 문화는 거의 남지 않았다. 곽은별씨는 "요즘 남자 고교생들을 보면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면서 훈훈한 아이들이 정말 많아졌다"며 "꽃미남 열풍이 불면서 연하남에 대한 생각이 많이 개방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남자 대학생들도 연상녀 사귀는 것이 유행이다. 신용재씨는 "연상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력"이라고 했다. 직장녀를 사귀면 데이트 비용에 대한 부담이 덜하고 편하게 기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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