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43·대구 동구 안심동)씨는 네 아이의 엄마입니다. 맏딸인 초등학교 6학년 정현이와, 3학년인 둘째 용수, 1학년인 셋째 지연이, 그리고 3살 막내 예준이를 두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모두 애물단지라지만 지영씨에게는 마음을 무던히도 쓰리게 하는'아픈 손가락들'입니다. 게다가 남편까지 아프니 가족 중 건강한 이는 맏이 정현이뿐이지요.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현재 지영씨의 속을 가장 많이 태우는 것은 막내 예준이입니다. 예준이는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기침과 가래, 구토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하다보니 모세기관지염이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핏기조차 채 가시지 않은 핏덩이에게서 주사기 7개 분량의 피를 빼내는 등 온갖 검사를 다 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예준이는 혈관이 피부 안으로 숨어드는 유형입니다. 한번 링거를 꽂을 때마다 간호사들은 혈관을 못찾아 몇시간씩 쩔쩔매고, 그 시간 동안 예준이는 울다울다 탈진을 하곤 합니다. 지영씨는 "혈관 성형이 가능하다면 정말 내 혈관이라도 떼내 주고 싶다"며 가슴을 쳤습니다.
사실 모세기관지염이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닙니다. 보통 어린아이들이 감기 비슷하게 자주 앓는 질병이지요. 하지만 예준이는 상태가 많이 심각합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입원을 반복하고, 한번 입원을 하면 2주가량 병원에 머무르곤 합니다. 워낙 입원이 잦다보니 가뜩이나 혈관이 약한 예준이의 팔·다리는 링거 바늘때문에 멍자국으로 가득합니다. 입원하지 않더라도 늘 목과 가슴이 가래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하루 한번은 병원을 찾아 호스를 삽입해 가래를 제거해 줘야 합니다.
◆비용이 없어 치료도 못해요
둘째 용수(11)는 남들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언어와 신체발달이 여느 아이들에 비해 워낙 늦다보니 학교를 1년 늦춰 입학시킨 것입니다. 아직도 말이 많이 어눌한 용수는 친구들에게 늘 따돌림을 당합니다. 게다가 눈도 약간 사시가 있어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입니다. 용수는 "친구들이 자꾸 괴롭혀 학교 가기 싫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용수가 말이 늦은 것은 돌이 되기 전 열성경련을 앓았기 때문입니다. 발음이 약간 어눌한 지영씨는 "혹시 나를 닮아 그런 건 아닌가, 그때 치료만 제대로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미안함이 늘 마음에 남아있다"며 "지금이라도 꾸준히 언어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비용이 없어 중단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용수는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지영씨네를 돌보고 있는 안심제1종합사회복지관 예준혁 사회복지사는 "용수는 처음에는 꾸준한 치료를 통해 발음이 많이 좋아졌지만 최근 3개월가량 치료를 중단하면서 다시 악화되고 있다"며 "하루라도 빨리 언어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지연이는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멍이 난 채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별다른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늘 숨이 가빠하다보니 많은 주의가 필요합니다. 운동장을 달리는 것도 안 되고, 심장에 무리가 갈 만한 행동을 해서도 안 됩니다. 지영씨는 "일 년에 한번씩 검사를 받는데 늘 조마조마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병원비만 충분해도…
아이들이 이렇게 줄줄이 병을 앓게 된 것은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네명의 아이들 모두가 잦은 기관지염과 급성편도염, 축농증 등을 달고 사는 것이 아빠를 닮아서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아빠인 김차훈(50)씨 역시 현재 부산까지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김씨는 과거 가죽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독한 화학약품으로 인해 폐결핵을 앓게 됐습니다. 게다가 갑상선 질환까지 앓으면서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지영씨는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급성 편도염을 앓고 있는데 용수의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한 정도라고 한다"며 "하지만 치료비조차 막막한 상황에서 수술은 엄두를 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현재 지영씨네는 11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여섯 가족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생활비와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하기조차 빠듯한 형편에 의료비 지출이 많아 늘 빚에 허덕입니다.
지영씨는 "그래도 네 아이들이 있어 산다"고 했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아이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왜 낳았을까' 후회도 하지만 귀여운 예준이의 재롱을 보고, 공부 잘하고 집안일까지 거뜬히 해내는 큰딸 정현이를 보고 있노라면 고달픈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지영씨의 소원은 병원비 걱정없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충분한 치료를 해주는 것입니다. 지영씨는 "부모가 되서 이런 병을 갖고 태어나도록 한 것만 해도 미안한데, 병원비 걱정에 필요한 치료조차 제대로 할 수 없으니 가슴이 찢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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