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의 한일 이야기] 가족 관계의 구속

입력 2010-04-24 07:22:30

일본은 초고령 사회이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22.8%에 달했다. 머지않아 네 사람 중 한 명은 노인이 될 것이다. 한국도 2000년에 인구의 7%가 노인으로 고령화 사회에 돌입했다. 앞으로 10년 내에 14%를 넘어 고령 사회가 되고, 2020년 중반에는 20% 이상의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 속에서 우리는 심각한 노인 간호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조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친구는 적었지만, 나는 가족 모두가 함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자상한 할머니의 방에 가서 퍼즐과 카드놀이를 하곤 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나는 차츰 할머니의 방에서 멀어졌다. 옛날처럼 할머니의 등을 두드려주는 기회도 적어지고, 할머니와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귀찮게 여겼다. 나중에 할머니의 허리가 굽은 것이 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느꼈다.

지난해 그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전에 몇 년 동안 노인 간호 시설과 병원을 오갔다. 어머니는 혼자서 화장실도 갈 수 없는 할머니를 몇 년 동안 집에서 간호하느라 기력과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부모님은 할머니를 노인 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내가 반 년 만에 집에 돌아왔을 때, 할머니의 간호에 지친 어머니는 꼬챙이처럼 야위어 있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부모를 시설에 보낼 수 있는가"라고 가볍게 이야기한다. 노인을 모시고 있는 가족이 아무런 고민 없이 시설에 보낼 리가 있겠는가. 집에서 노인을 돌보면서 갈등과 원망이 싹트고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가족만으로는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 때 시설과 같은 다른 사람의 도움의 손길을 필요료 하게 된다. 그러면 안 되는 것일까.

최근 일본에서는 노인 시설과 홈 헬퍼에 노인 간호를 맡기는 사람이 늘고 있다. 가족 관계가 약화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인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간호 기간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그래서 노인이 된 아들이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돌보는 이른바 '노노간병'(老老看病)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고통은 간호를 하는 쪽만이 아니다. 부양을 받는 노인도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는 죄책감에서 마음이 무겁다. 할머니가 "너무 오래 살아서 미안해"라고 했을 때 나는 인간의 운명에 슬픔을 느꼈다. 신(神)만이 알 수 있는 자기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해야 하는 고통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복지 국가 스웨덴에서는 노인이 자녀와 동거하는 일이 거의 없다. 노인은 혼자 생활하면서 병원으로부터 재택 의료 지원을 받고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적으로 가족들이 부모를 간병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그렇다고 사랑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간병을 하는 사람도 간병을 받는 사람도 정부가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2008년 개호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이상으로 가족주의가 강한 한국이 앞으로 노인 개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 갈 것인가.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자신의 부모를 끝까지 집에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관념이 있다.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유교적 가치관 때문이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부모에 대한 봉양 의무를 진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아이에게 그 의무를 요구하게 된다. 이러한 의무의 연쇄라는 '구속'이 가족의 유대를 의미한다면 가족 관계는 우리에게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우리는 효의 의미를 되새김하면서 갈등을 계속 반복해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효의 미학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지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2천500년 전 공자가 이야기한 효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이다. 효는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가족을 유지하는 핵심적 가치이다. 그러나 효가 가족을 구속하고 갈등을 낳는다면 그것은 효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효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산업화 시대의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국가와 개인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東北)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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