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적 생각일 뿐 큰 문제 없어…속이 차거나 소화기능 약한 사람은 좋지
'지글지글 보글보글'.
한국인의 입맛을 가장 끌어당기는 표현이다. 음식을 끓이고 데우는 소리에 민감하다는 것은 그만큼 따뜻한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의미. 예전부터 우리 조상들은 '따뜻한 밥과 국'을 식사의 기본으로 여겼다. 밥상의 밥과 국이 식어 있으면 음식 내오는 이의 무성의함을 타박하는 빌미가 됐다. 조선시대 민간에는 시부모에게 찬밥을 올리면 소박맞는다고 해서 칠거지악(七去之惡)에 추가했을 만큼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 걸 중시했다.
조선 중종 때 학자 김안국은 어려서부터 생활을 검소하게 해 청백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식사는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 반찬이라곤 채소와 장 하나가 전부였다. 이를 걱정스럽게 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반찬이 더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배 고플 때를 기다려 먹으니 시장이 한 반찬이요, 밥을 따뜻하게 먹으니 더움이 또 한 반찬"이라고 했으니 따뜻한 음식을 중히 여기는 마음은 반상을 넘어섰다.
서양 식탁에도 따뜻하게 먹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수프다. 수프도 끓여 먹지만 한국인들이 먹는 국이나 찌개처럼 후후 불면서 먹어야 할 정도로 뜨거운 건 아니다. 스푼으로 떠서 입에 넣어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의 온기가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일본인들의 된장국(미소시루) 역시 어딜 가나 미지근한 온도다.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 문화가 정착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있다. 그 가운데 날씨와 연관짓는 풀이가 가장 와닿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온대 대륙성 기후는 덥고 습한 날씨가 오래 계속돼 음식의 부패가 빠르다. 부패를 막고 상한 음식으로 인한 배앓이를 막기 위해서는 끓여 먹는 게 가장 안전하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중국의 초가집은 15년 만에 지붕을 다시 이는데 우리나라 초가집은 1년 만에 다시 이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건조한 북중국의 풍토와 다습한 우리나라의 풍토 차이로 인해 백성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을 개탄한 것이다. 이처럼 미생물이 살기 좋은 풍토에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이 음식을 따뜻하게 먹는 문화를 만든 것은 자연에 적응하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체질 역시 여기에 맞춰진 셈이다.
이에 비해 유목민들은 우유나 치즈 같은 유제품을 많이 먹는다. 수시로 이동해야 하며 생활하는 민족에게는 휴대하기 편한 음식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동물의 젖, 즉 유제품이 많이 생산되는 조건도 영향을 미친다. 유제품이란 되도록 따뜻하지 않아야 오래 보존된다. 이들이 더운 음식보다 차가운 음식을 많이 먹는 체질이 된 이유도 냉온에 차이가 있을 뿐 자연에 적응해온 것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식기도 따뜻하게 먹는 음식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기그릇이나 뚝배기 같은 그릇이 대중화된 데는 열전도율이 낮아 담긴 음식이 쉽게 식지 않는 보온성이 뛰어나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해장국이나 된장찌개를 뚝배기에 담는 것도 마찬가지 의미다. 식기의 윗부분이 오목한 입체형인 이유에도 따뜻함을 보존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식기마다 뚜껑이 있는 것도 같은 발상이다. 서양 식기가 대부분 접시 같이 평면적이고 뚜껑이 없는 것은 음식을 뜨겁게 유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조리한 음식의 열이 잘 빠져나가도록 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체질은 과연 따뜻하게 먹어야만 속이 편안한 걸까. '차게 먹으면 배탈 난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근거가 있는 것일까. 곽병원 곽동협 병원장은 "따뜻한 음식이 주로 식탁에 오르다 보니 통념적으로 그리 생각하는 것일 뿐 차게 먹는다고 쉽게 배탈이 나는 건 아니다"며 "찬 음식이라도 위장으로 내려가면서 덥혀지기 때문에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들은 주의가 필요하다. 대구한의대 한방소화기내과 변준석 교수는 "밀과 고기가 주식인 서양인에 비해 쌀과 채소를 많이 먹는 동양인은 상대적으로 소화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따뜻한 음식이 낫다"며 "속이 차갑거나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의 경우 지나치게 찬물이나 우유 같은 건 좋지 않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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