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이름

입력 2010-04-16 11:06:04

영화 '늑대와 춤을'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은 색다르다. 제목도 주인공의 이름이다. '주먹 쥐고 일어서' '머리에 부는 바람'도 나온다. 인디언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비바람이 몰아치는 따위의 자연현상으로 이름을 짓기도 했고 자라면서 특별한 재주나 습관이 반복되면 그 특징을 따서 이름으로 불렀다. 특징으로 이름을 짓는 인디언식 이름 짓기는 청소년 집단수련회 등에서 자주 활용된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관심과 이해를 높여 준다는 이유에서다.

옛 사람들은 여러 이름을 가졌다. 호적에는 항렬을 따른 관명을 올렸지만 어릴 적에는 역신의 시기를 막는다며 개똥이 식의 천한 이름을 아명으로 썼다. 성인이 되면 친구와 친지들이 허물없이 부를 때 쓰는 자를 지어줬다. 결혼한 여자에겐 자란 마을의 이름으로 택호를 붙였다. 무슨 댁, 무슨 아지매 등이다. 당연히 남편은 무슨 양반, 무슨 아재가 됐다. 학문과 덕행이 알려진 사람들은 삶의 여정을 담아 호를 지었다. 나라에 공이 큰 사람에게는 시호가 내려졌고 신사임당은 여자로서는 드물게 당호를 받았다.

세례명이나 법명은 성인의 품행과 성덕을 본받게 한다. 연예인은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예명을 쓰고 일부 작가들은 필명을 쓰기도 한다. 같은 이름도 적잖지만 이름은 그 사람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담는다. 유명인의 이름은 곧바로 이미지가 되어 다가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을 수치로 여긴다.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친박연합이란 정당명을 사용하지 말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박 의원의 소송 대리인은 '친박연합은 박 의원과 관계가 없는 정당인데도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암묵적 지원을 받는 듯한 혼동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자 친박연합 대변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국민 대통합의 완성을 향한 결사일 뿐 박 의원을 판 적도 이용할 생각도 없다'며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항변했다.

친박연합의 대표는 박 의원의 사촌 오빠이자 박 전 대통령의 조카다. 삼촌과 사촌 여동생 중 누구를 겨냥했는지는 알 수 없고 박 의원의 대응이 과민반응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정 이름의 이미지로 지지를 얻겠다는 의미라면 아무래도 찜찜한 뒷맛이 남는다. 정치 지도자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서영관 논설실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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