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Why?] 앙드레 드랭 / 강의 배

입력 2010-04-01 14:11:48

20세기 미술이 실제로 출발한 것은 20세기 들어 5년이 지난 후인 1905년부터였다. 1905년에 태어난 야수파는 1908년에 자취를 감출 정도로 미술사조에 잠시 머문 운동이었다. 야수파는 엄격한 의미에서 선언문이나 이론 등을 정식으로 갖춘 유파는 아니었으며, 단지 공통의 관심을 갖고 있는 화가들이 마티스를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형성됐다. 이들 화가들의 특징은 강렬한 순수 색채에 있었으며, 그 색채는 공간의 구성이나 감정 및 장식 효과를 위해 임의적으로 사용됐다. 야수파 그룹 중에서도 가장 야수파적인 정열의 화가는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1876~1958)를 꼽을 수 있다. 블라맹크와 성격과 활동 면에서는 대조를 이루었지만 각별한 우정을 나눈 드랭도 눈여겨볼 화가다.

앙드레 드랭(1880~1954)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세라는 늦은 나이로 미술학교에 입학해 1901년 블라맹크와 함께 고흐 전시를 본 후 미술에 대한 눈을 새로이 뜨게 됐다. 그리고 블라맹크의 소개로 미술관에서 만난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와 함께 야수파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파리 근교의 샤투에서 살면서 함께 활동했던 블라맹크와 드랭 등을 일컫던 샤투그룹은 야수파 중에서도 자유분방하고 거친 특징을 보이면서 가장 야수파적인 작품 활동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후 블라맹크가 보수화되었듯이 드랭도 1920, 30년대에 와서 프랑스적 질서로 회귀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보수적이었던 마티스와 달리 그는 블라맹크와 같은 아나키즘(Anarchism)에 심취하기도 했다. 블라맹크적 의식과 마티스적인 양식을 혼합해 표현한 그의 작품 속에는 노동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었고, 혁명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음을 비판해 좌익에 대한 공감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그러나 그의 주위는 항상 쓸쓸했으며 고독한 환경 속에서 생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베를린에서 가진 개인전으로 인해 친독파로 몰려 불행한 말년을 보내다 샹프루시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작품 〈강의 배〉에서는 신인상주의적인 수법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생생한 색채와 필치로 묘사되는 야수파적인 요소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화면의 하단부에서 상단으로 노를 저어 나가는 배의 동적인 구도는 풍부한 색채 구사와 찬미가 함께 어우러진 야수파 도입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김태곤(대백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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