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라오스는 중국,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 다섯 나라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로 바다와 철도가 없다. 바다가 없는 대신 메콩강이 길게 흐르고, 국토 어디서나 산과 크고 작은 강을 볼 수 있다. 메콩강 총 4천500㎞ 중 2천500㎞가 라오스 영토를 통과한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들, 철봉에 매달리듯 나무와 원두막에 거꾸로 주렁주렁 매달려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자전거를 타고 좁은 길을 느긋하게 달리는 아저씨, 사람 왕래가 적어 풀이 길을 반 이상 차지한 오솔길…. 라오스의 풍경은 우리나라 1960년대와 흡사하다.
베트남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30분이면 라오스 공항에 도착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라오스는 아직 낯설다. 현지 한국 교민은 1천명 정도이며, 한국 내 라오스 사람은 약 20명에 불과하다. 양국 사이에는 아직 직항로가 없고, 교역 규모가 그다지 크지도 않다.
곽구영(60·경산1대학교 병원의료행정과) 교수는 라오스를 사랑한다고 했다. 전화로 몇 번 이야기를 나눌 때만 해도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는데, 만나서 라오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 말과 표정에 애정이 넘쳤다. 라오스 문화원(대구시 북구 노원동)을 설립한 원장이기도 한 그는 라오스 사람들의 문화와 전통, 살아가는 모습을 알리는 데 열중하고 있다. 곽 교수를 비롯해, 김원수 후원회 회장(천일장갑 주식회사)과 ㈜대구상조 정윤화 회장을 비롯해 8명의 이사들이 라오스 문화원 운영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다.
그들은 라오스와 사업상 거래를 트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몇 차례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평화롭고 친절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에 반했던 것이다. 이해관계 없이 그저 라오스와 라오스 사람들을 좋아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라오스는 가난한 나라다. 연간 소득 수준이 수도권은 1천800달러, 지방은 4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대구 문화원이 한국 내 유일한 라오스 문화원이지만 라오스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민속 자료, 홍보인쇄물 등을 제공하고, 긴밀한 연락을 취할 뿐이다.
대구에 라오스 문화원을 개설한 것은 2004년 12월. 라오스 외교부의 허가와 주한 라오스 대사관의 인증을 받았다. 문화원은 라오스의 교육, 문화, 역사, 시민들 정서, 종족, 예술 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 한국인의 라오스 관광과 사업 진출 등에 관한 정보도 제공한다.
곽구영 교수가 라오스 문화원 개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5년. 당시 대사관 개설 문제로 라오스 관리가 서울을 방문했는데, 그는 북한 김책 공업대학교 출신으로 한국말에 능통했다. 그와 함께 몇 차례 강연과 기업인 간담회 등을 진행했던 것이 인연이 됐다.
"라오스는 우리나라와 닮은 데가 많습니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1960년대 한국과 비슷한데, 순박하고 친절합니다. 인구는 650만 명 정도로 적은 편이지만, 면적은 23만6천800㎢로 남북한을 합친 것(22만 2천㎢)과 비슷합니다. 전체 면적의 70%가 산악 지대라는 점도 우리나라와 닮았습니다. 외모도 한국인과 아주 흡사합니다. 치안이 잘 확보돼 있고, 2천500년의 역사를 가졌다는 점도 우리와 닮은 점입니다."
라오스 북부 지역에는 산족들이 많다. 그들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학설도 있다. 유전적으로도 라오스 북부지역 산족들, 티베트인, 한국인, 일본인은 동일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비슷한 언어도 많고, 아예 뜻과 발음이 같은 단어도 있다. 구슬을 의미하는 '옥'을 그들은 '욕'으로, 불을 의미하는 '화'를 '화이'로 발음한다. 보내다는 의미의 '송'과 기르다는 의미의 '양'은 우리 말과 뜻과 발음이 같다. '달'은 '따', '가까이'는 '까이', 붓글씨 쓸 때 '먹'은 그대로 '먹', 단지를 뜻하는 '통' 역시 '통', 어린 것을 의미하는 '풋'은 '푸'로 비슷하다. 아라비아 숫자 3과 10은 발음과 뜻이 우리와 꼭 같다. 나머지도 엇비슷하다.
"착하고 순박하다는 점에서 사람들 심성도 한국인과 비슷합니다. (독한 한국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한국인은 순박하고 착한 편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 외국 기자나 여행객들은 흔히 착하고 순박한 조선인들이 어떻게 험한 시대를 견뎌낼지 걱정된다는 글을 쓰곤 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상거래가 자유롭고, 개인 재산도 보장됩니다. 경제 수준은 60년대 초 우리나라와 비슷한데, 문맹률이 70%에 이르고, 그나마 있는 학교도 천막이나 판잣집인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도 학용품도 태부족입니다. 산악지대가 많다보니 교통, 도로, 전기, 상하수도 등 인프라도 상당히 부족하지요. 하지만 따뜻한 기후 덕분에 적어도 배고픔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곽구영 교수는 병원행정과 교수다. 병원의 행정직원, 병원코디네이터 양성, 병원 운영 등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분야와 라오스는 별 연관이 없는 셈이다.
"학창시절 국제경제를 전공했습니다. 세계인의 삶에 관심이 많았지요. 5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는 지독하게 가난한 나라, 존재감도 미미한 나라였어요. 그러나 그 시절 우리나라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준 선진국 사람들이 있었지요.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만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세계 곳곳의 이웃을 둘러보고 도울 것은 돕고, 이해할 것은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라오스는 비록 작은 나라이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라오스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라오스 문화원은 2006년 구미 법성사와 신도들의 도움으로 라오스 북부 지역에 초등학교를 건설하기도 했다. 따뜻한 기후 덕분에 먹고사는 문제는 어려움이 없지만, 부족한 사회기반 시설과 70%나 되는 문맹률은 라오스의 큰 걱정거리다.
라오스 현지의 한국 교민은 1천 명 정도이지만 활동은 왕성하다. 댐 건설과 메콩강 개발 건설, 국제신공항 건설 등에 한국 기업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소유한 은행도 있다고 한다. 대구 청구고등학교 출신 교민이 현지에서 자동차 오토바이 조립공장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곽 교수와 문화원 사람들은 라오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카페(http://cafe.daum.net/laocul)도 운영한다. 라오스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고, 회원들의 활동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현재 대구에는 스페인 문화원(인터불고 호텔)을 비롯해 이탈리아 문화원(앞산 근처 이태리 식당), 독일 문화센터, 폴란드 문화원 등이 있는데, 대부분 소규모로 활동 중이다. 이외에도 몇몇 국가의 문화원이 있지만 대체로 대학 교수들의 연구 목적으로 존재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곽구영 교수는 "대구에 외국 문화원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대구와 한국을 넘어 세계인과 교류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대구에 외국 문화원이 많이 생기고, 외국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것이 곧 세계인, 국제인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구시 차원에서 세계 각국의 문화원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입주 공간을 마련한다면, 시민들이 세계인과 소통하고 세계인을 이해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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