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입적하신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참 말이 많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힘을 주는 말, 기분 좋게 하는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이 있는가 하면 실망하게 하는 말, 의욕을 잃게 하는 말, 상처를 주는 말, 슬프게 하는 말들이 있다. 때로는 말이 아니라 지껄임이나 소음처럼 느껴질 때도 있어 귀를 닫아 버리고 말 없는 곳에서 귀를 쉬게 하고 싶을 때도 있다.
16년간의 두드림, 6개월간의 촬영을 거쳐 탄생한 162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침묵'이 소개되고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이 '침묵'을 어떻게 영상 속에 담을 것인가를 고민하며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한 카르투지오 수도회(1084년 프랑스의 샤르트뢰즈 지역에 성 브루노에 의해 설립된, 가톨릭교 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기로 유명한 수도회.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하며 방문객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의 촬영을 허락받기까지 그는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끊임없이 두드렸다고 한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6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제는 촬영을 해도 좋습니다'라는 허락을 받고 6개월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담아낸 필름으로 162분짜리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여느 다큐멘터리처럼 영상을 돋보이게 해주는 배경 음악도, 익숙한 목소리의 내레이션도 없다. 자막으로 설명을 해주지도 않는다. 인위적인 촬영용 조명도 쓰여지지 않은 채 그들 그대로의 모습으로 162분의 시간을 담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을 보고 있는 우리에게 답답함을 주거나 부자연스러움을 주지 않는다. 서로가 마주보고 말을 하고 있어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우리들을 볼 때 아이로니컬하지 않을 수 없다.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참말'만을 하기 위해서이며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입 벌려 말을 해야 할 경우에도 침묵만을 고수하는 사람,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이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려 보여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비겁한 침묵이며 비겁한 침묵이 우리 시대를 얼룩지게 한다고 했다. 침묵의 의미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당당하고 참된 말을 하기 위해서이지, 비겁한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디에도 거리낄 게 없는 사람만이 당당한 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당당한 말이 흩어진 인간을 결합시키고 밝은 통로를 뚫을 수 있으며 수도자가 침묵을 익히는 의미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한다. '말'이 많은 시대에 '침묵'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본다.
박 정 숙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이준석 이어 전광훈까지…쪼개지는 보수 "일대일 구도 만들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