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만든 조각가 김규룡씨 한달만에 소회
3일 오후 4시쯤 대구오페라하우스 광장에 세워진 호암 이병철 선생의 동상을 한 중년 신사가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는 동상의 발과 다리 등 구석구석을 닦고 또 닦았다. 이 동상을 만든 조각가 김규룡(57)씨다.
지난달 11일 동상 제막식이 있은 후 한달 정도 지났지만 매일 동상을 찾고 있다고 했다. "거의 3개월 동안 다른 일 다 팽개치고 함께 지냈던 동상인데 홀로 남겨두고 떠나려니 뭔가 허전해서요. 저절로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하는데 어쩝니까? 요즘처럼 비가 올 땐 동상에 이끼가 낄 수 있어 매일 손질을 해줘야 합니다."
김 작가가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 창업자 고 이병철 선생 동상 제작을 의뢰받은 것은 지난해 10월. 하나의 동상을 제작하는 데 보통 1년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로댕이 프랑스 대문호 발자크 동상을 만들 때 프랑스문학가협회가 제시한 기간이 18개월이었어요. 그래도 기한 내 완성하지 못했지요. 하물며 한국 경제의 한 축이었던 호암 선생의 동상인데 3개월 만에 완성하라니, 고민이 많았지만 욕심이 생겨 승낙했지요."
이후 그는 자신의 욕심을 많이 탓했다고 했다. 마음은 바빴지만 진도가 나가지 않았기 때문. "밤낮으로 작품에만 매달렸어요. 호암미술관, 경기도 용인의 호암 묘소 등 호암의 발자취가 있는 곳이라면 모두 발품을 팔며 호암의 모습을 눈에 담았지요."
상·하반신 제작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동상은 얼굴 모양만 닮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인품과 덕, 혼이 들어가 있어야 해요. 하지만 사진 자료가 그렇게 많지 않더군요." 진취성, 사업으로 인류에 봉사하는 미덕, 인재를 사랑하는 호암의 인품을 나타낼 미소를 그려넣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연일 밤샘하며 생긴 목 디스크와 불면증을 수면제로 버티던 그는 12월 중순쯤 작업복을 내팽개쳐버렸다. 휴대전화 전원도 꺼버리고 3일간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김 작가가 잠적하는 바람에 대구시 공무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김철섭 시 경제정책과장은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했다. "제막식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작가가 사라지다니 미치겠더군요. 경산 작업장에 뛰어갔더니 머리 없는 동상만 덩그러니 있었어요. 동상 없는 제막식이라니, 생각하기도 싫어요."
시 공무원들이 노심초사할 때 김 작가는 고향인 안동과 경남 거창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단다. "안동댐에서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봤고, 거창 화강석 단지에서는 돌들과 얘기를 나눴어요."
3일간 외출을 마치고 나타난 김 작가는 얼굴 없는 호암의 찰흙 덩어리와 마주앉아 소주잔을 함께 기울였다. 소주 한병이 거의 비워졌을 때 호암의 미소짓는 얼굴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했다. "이후 거의 작업장에서 한 발짝도 안 나왔어요. 얼굴 상만 30여개 정도 부수고 만들기를 반복했지요." 자신의 결혼기념일 1월 30일도 잊을 정도였다고 했다.
제막식 날 그는 행사 내내 동상을 쳐다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행사장을 떠날 수도 없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그는 "동상을 처음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하면서도 떨려 똑바로 지켜볼 수 없었다"고 했다.
김상훈 시 경제통상국장은 "동상 제작을 지역의 한 작가에게 맡긴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던 삼성과 호암재단 측이 완성된 동상을 보고서는 매우 흡족해했다"고 했다. 김 작가는 "호암의 국가와 인재를 포용하는 정신을 양팔을 벌려 포옹하는 모습으로 재현했다"며 "앞으로 호암 동상이 지역 경제를 끌어안고 보듬는 하나의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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