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의 향토성과 강렬한 빛의 묘사가 주제
초가집
작가:서진달(徐鎭達·1908~1947)
제작연도:1940년 경
재료:종이에 수채
크기:22.7×27.8cm
소장:국립현대미술관
지금까지 계절감에 맞는 겨울 풍경을 고르다 보니 주로 설경과 앙상한 나무로 표현되는 쓸쓸한 장면이 많았다. 서진달의 이 소품 수채화는 아마도 삼동이 끝나갈 무렵 아직 추위는 덜 풀렸어도 쨍하게 맑게 갠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찬 공기를 뚫고 눈부시게 퍼지는 이맘때쯤이 아닐까 싶다. 외양간이 붙은 초가 한채, 감나무 한그루와 두엄더미, 여물통 앞에 거적을 덮고 있는 누렁 소 한마리가 한가롭다. 평범해 보이나 분명 고향의 모습이고 '향토'에 대한 정서가 은근하다. 그의 유작이 대부분 누드이거나 도시적 감수성을 띠는 데 비하면 다소 예외적인 소재다.
이 그림의 주제는 무엇보다 빛의 묘사라고 하겠다.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강렬한 빛의 인상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가지붕과 흙 담에 쏟아지는 양지바른 남향의 볕살은 처마 밑에 짙은 그늘을 만들고 침침한 외양간 안까지 환하게 비추며 소의 내민 머리와 어깨 위 거적을 눈부시게 드러낸다. 나무 아래 두엄더미조차 샛노란 짚더미의 밝은 색에 녹아들어 사물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은 사라져버린다.
앞서 초기 수채화들을 보면 대상을 재현하는 데 주된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마치 빛에 의한 시각적 현상을 탐구하는 듯 보이는데, 낮은 명도(어둠)의 색채를 투명성을 유지하도록 구사하여 그늘을 그리고 짙은 그림자를 묘사하고 있다. 강한 보색대비를 써 그림 전체에 강약의 리듬과 생기를 불어넣어 미적 효과와 생생함을 동시에 살리고 있다. 인상파가 거둔 색채 혁명의 성과란 세잔의 말을 빌리면 어두운 갈색조의 키아로스쿠로(명암법) 대신 발랄한 색채의 투명함으로 화면을 채우는 것인데 이 작가는 지금 그것을 훌륭하게 실현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처음 받아들인 서양화는 흔히 인상파 아류의 절충적인 아카데미즘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에는 여러 근거가 있지만 우선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작가인 구로다 세이키가 프랑스 유학시절 아카데미즘 화가로부터 배웠다는 사실을 든다. 요컨대 인상파의 제대로 된 이해와 약간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풍이 일본적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주제나 정서에서 그렇고 구로다의 나중 그림에서 밝은 색채에 대한 감각적인 표현은 명백히 인상주의적이다. 초기의 혼합된 중간색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고 원색에 가까운 선명한 색으로 전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나아가 말기에 일본적인 구상화의 탐색으로 돌아섰을 때도 색채만은 앞의 성과를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다.
이 작품의 채색에서 보듯 색채와 구조에 대한 서진달의 인식은 그 인상파 이후의 지점에 있음이 분명하다. 다소 과잉된 표현이 느껴지는 오지호의 1939년 작 에서보다 오히려 더 진일보한 것 같다. 더군다나 완성에 대한 의지도 없이 습작처럼 마무리한 태도에서 주제의 서정성과 거리를 두며 조형적 문제로 씨름한 세잔을 더욱 연상케 한다. 비록 소품이지만 작가의 생각이 집약적으로 드러나며 새로운 단계의 조형 기법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서진달은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대구 계성학교에서 1년 반 정도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들을 지도했다. 놀랍게도 당시 일주일의 반은 인천에 있는 소화여고에 출강하며 양쪽으로 통근했다. 이 젊은 엘리트 예술가의 넘치는 열정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김영동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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