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고 不淨 타지 않는 안동 대표 비빔밥 '우뚝'
숱한 문중과 고택들이 즐비한 안동에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통음식이 있다. '헛제삿밥'이다. 제사음식이지만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한 먹을거리. 정갈하고 깔끔한 제사 음식의 맛과 정성은 고스란히 담아내면서도 일상식으로 산업화한 전통 먹을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예부터 안동의 양반가나 유가(儒家)에서는 '접빈객 봉제사'(接賓客 奉祭祀)를 으뜸으로 꼽았다. '제사 덕에 이밥 먹는다'라는 말이 전해온다. 꽁보리밥에 보잘 것 없는 반찬이 일상식이었던 시절, 제사가 끝나고 제사상에 올렸던 갖가지 나물에다 쌀밥, 고기반찬을 곁들여 먹는 제삿밥은 별미 중 별미였다.
유교적 예법을 중요시 했던 안동인들은 이런 제사를 통해 가족과 가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조상을 섬겼다. 특히 제사를 지내고 제사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서로의 정을 다지기도 했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후대의 복을 기원하는 제사 음식은 이 때문에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정갈하고 부정타지 않는 몸으로 정성들여 장만해 음식의 맛과 품격, 어떤 면에서도 흠잡을데 없다.
◆세계화·대중화 위해 '헛제삿밥을 안동 비빔밥으로'
안동 헛제삿밥은 비빔밥(골동반)의 한 종류다. 삼색나물에다 밥을 버무려 먹지만 다른 지역 비빔밥과 달리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깨소금을 넣은 집 간장을 사용하는게 특징이다. 여기에다 고기과 전, 탕 등 몇몇의 제사음식을 곁들여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제사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말 그대로 제사를 허투루 지내고 먹는 제사밥이다. 그래서 '헛, 또는 거짓' 제삿밥이다.
'헛제삿밥'은 조선시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유명서원이 많은 안동지역에서 공부했던 학자·선비·유생들이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축과 제문을 지어 허투루 제사를 지낸뒤 음식을 나눠 먹었다는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또 밤참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양반네들이 제사를 핑계로 음식을 정성껏 장만하게 하고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음식만 먹는 것을 보고 하인들이 헛제삿밥이라고 한데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다.
이 같은 헛제삿밥이 상품화돼 일반인들이 일상음식으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시작한 것은 1978년이다. 당시 진성 이씨 문중의 맏며느리로 제사를 모셔왔던 조계행(84) 할머니가 안동댐 수몰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고택 등을 옮겨 조성한 안동댐 민속촌에서 '안동 민속음식의 집'을 운영하면서 처음으로 헛제삿밥을 상품화시켰다.
이후 '까치구멍 집'이 이듬해 헛제삿밥 전문음식점으로 문을 열었다. 이 두 식당은 2001년 안동댐 입구 헬기장 맞은편으로 나란히 이전해 외지 관광객들에게 헛제삿밥의 품격있는 맛을 전해오고 있다.
최근 들어 안동지역에서는 이 헛제삿밥의 이름을 '안동 비빔밥'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다. 젊은층과 외국인, 특정 종교인들에게 혹시나 있을 제사음식이라는 막연한 거리감이나 거부감과 금기(禁忌) 이미지를 줄일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 더불어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정성을 들여 가장 깔끔하게 만들어 낸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차별화 전략으로 '안동 비빔밥'을 알려야 한다는 안동인의 자부심도 깃들었다.
◆최고의 재료와 정성들인 맛깔스런 헛제삿밥
조계행 할머니는 "당시 시청에서 안동지역이 가지는 특성을 담은 음식 개발을 권유해왔어. 이것저것 생각하다 역시 양반가나 유림들이 많은 안동지역의 대표적 음식은 제삿밥이라는 생각이었지.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정성스럽고 맛깔스런 제사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헛제삿밥'이란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반응이 좋았어"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조 할머니는 자신이 직접 제사를 모시는 집안 맏며느리였지만 '대동식당'이라는 안동에서 꽤 유명했던 음식점을 운영했던 시어머니의 제사음식에 대한 손맛을 빠짐없이 이어받았기에 헛제삿밥을 상품화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조 할머니의 손맛은 며느리인 방옥선(56·백조로타리클럽 회장)씨에게 고스란히 전수됐다. 방씨는 2007년 (사)대한명인 문화예술교류회로부터 향토음식 명인으로 지정, 대한명인인증서를 받는 등 헛제삿밥의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헛제삿밥은 제사를 지내고 나오는 음복상 그대로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고사리·묵나물·도라지·콩나물·무나물·숙주나물·토란 등 나물 6, 7가지를 소금간에 맞춰 볶거나 삶아낸다. 여기에다 제사음식인 탕, 각종 적(炙)과 전(煎)을 하나씩 담아 낸다. 내륙지방이면서도 상어고기인 돔배기와 고등어를 쪄서 곁들이는게 특징이다.
'맛 50년 헛제삿밥'(안동 전통음식의 집)과 '까치구멍집'은 1인상씩 나오는 기본적 헛제삿밥에다 안동 식혜와 조기, 도토리묵(청포묵), 떡 등을 곁들인 '선비상'과 '양반상'을 새 상품으로 개발, 헛제삿밥의 고급화에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헛제삿밥이 다른 지역의 비빔밥과 차별화된 것은 파·마늘·부추·달래·고추 등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고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양념한 집 간장으로 버무려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구수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탕은 어탕·육탕·채탕의 맛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도록 쇠고기·무·명태·오징어·다시마 등이 함께 들어간 막탕을 끓여낸다. 탕은 오래 끓여 맛이 담백하면서도 깊어 제사음식 고유한 맛을 느끼게 한다.
◆헛제삿밥의 영양은 최고, 신메뉴 개발 필요
음식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안동 헛제삿밥의 영양학은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도 제삿밥은 조리 특성상 금기 양념이 있고 단순한 메뉴인 만큼 산업화 대중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조리법과 메뉴 개발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안동과학대 허성미 교수는 "최근 식당을 찾는 사람들이 고추장이나 배추김치 등 고춧가루를 사용한 음식을 요구하고 있어 앞으로 헛제삿밥의 새로운 양념소스와 메뉴 구성,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또 "안동 헛제삿밥을 제대로 먹는 법 등 영양학에 대한 충분한 홍보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헛제삿밥을 구성하고 있는 각종 재료들의 식품영양학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했다. 각종 나물과 고사리는 단백질, 칼륨, 칼슘, 인 등 무기질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이다. 간고등어와 돔배기 등 생선류는 양질의 동물성 단백질뿐 아니라 몸에 좋은 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는 것. 이 밖에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찌거나 끓이고 삶는 조리법과 간결한 상차림은 현대인들에게 적절한 다이어트 음식으로 충분하다는 평가다.
향토음식산업화특별취재팀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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