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두 도시 이야기, 베를린과 본

입력 2010-01-19 08:31:00

중앙정부 부처 기능의 공간적 분할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 최근 우리 사회의 중심에 있다. 이 논쟁에서 등장하는 해외 사례로 흔히 독일의 경우를 든다.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은 베를린을 통일독일의 수도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통독 전까지 임시 수도 기능을 담당했던 서독의 본에 위치해 있던 연방정부 부처 중 일부는 베를린으로 이전하고, 또 일부는 본에 남겨두기로 했다. 1990년대 말에 이전이 완료되어 현재 총리실과 대통령실, 그리고 연방부처 14개 가운데 8개 부처는 베를린에, 나머지 6개 부처는 본에 위치하고 있다. 정부부처의 공간적 원거리(600㎞) 분할 상태에서 국가행정 기능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평소 궁금하던 차에 지난 연말 베를린과 본을 가볼 기회가 있었다. 독일에서 필자는 '베를린 현상'과 '본 현상'이 오늘날의 독일에서 존재함을 목격했다. 베를린과 본 두 도시 현상에서 나타난 사실을 압축하면, 독일의 경우 연방정부의 '핵심 중요기능'은 베를린과 본으로 분할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독일 정부의 중요 핵심 기능은 베를린으로 이미 모두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 발견한 '베를린 현상'은 이러했다. 첫째, 본에 위치한 6개 부처의 장관 모두가 베를린에서 상주하며 베를린에서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정부부처의 모든 장관이 베를린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모든 장관이 베를린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장관의 중요 결정과 관련된 핵심기능도 모두 베를린으로 통합되어 운영되고 있다. 연방의회가 베를린에 위치하고 있어 연방의회-총리-모든 부처 장관-모든 부처 핵심기능 등이 베를린에서 모두 긴밀하게 상호 협의하며 국가를 이끌어 가는 베를린 체제를 굳건히 지금 구축되어 있다.

둘째, 본에 위치한 부처 장관들의 취임식도 본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베를린에서 이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본에 위치한 부처 장관은 본을 1년에 2, 3차례 방문하거나 연중 한 번도 방문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셋째, 베를린에는 본에 위치한 부처의 제2청사가 있는데 그 제2청사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본으로부터 베를린으로 이전하는 공무원의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넷째, 베를린 도시계획에는 본에 있는 부처가 결국은 베를린으로 모두 이전되어 올 것에 대비하여 토지 용지가 마련되어 있다.

또한 '본 현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본의 정부부처에는 '실무'공무원들이 주로 근무하고 있고 베를린으로 잦은 출장이 이뤄지고 있다. 본과 베를린 간에 연간 6만6천회 출장이 이뤄지는 등 부처 분할에 따른 비용이 연간 170억~39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둘째 모든 장관과 중요 기능이 베를린으로 통합됨에 따라 본에 남은 부처의 공무원은 2등 부처라는 자괴감을 갖고 있으며 젊은 공무원들은 베를린으로 가기를 원한다. 셋째, 연방의회와 연방부처가 대거 베를린으로 빠져나간 본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정보과학 국제도시로의 새로운 도약 기회를 맞이하여 일자리와 도시 인구가 최근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기관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본에는 독일 정보통신회사인 도이치텔레콤, 우편업체인 도이치포스트 등의 대기업 본사가 입지하고 많은 중소규모의 정보통신업체가 입주하여 도시 발전의 동력이 새로 생겨났다.

특히 본에는 UN산하 국제기구가 대거 입주했다. 기후환경위원회 및 사막화대책위원회 등 19개의 UN 관련기관이 입주했다. 국제기구 입주는 본의 경제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연간 국제회의 등으로 매년 총 1천억원 내외의 지출이 이뤄지고 있으며 현재 본은 국제회의의 거점으로 발전하기 위한 계획이 추진 중이다. 2013년까지 본의 국제회의 참가인원을 현재의 연간 6만명에서 20만명으로 확대하기 위한 컨벤션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넷째, 본에 위치한 연방부처의 공무원은 배우자의 직장, 자녀교육 등 개인적 문제 등으로 본에 잔류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정치인의 이해관계 등이 본에서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렇듯 독일에는 현재 연방정부의 모든 장관과 중요 핵심기능이 베를린으로 이미 통합된 '베를린 현상'과 함께, 베를린으로 연방정부 기능이 대거 빠져나간 것이 오히려 새로운 발전의 기회로 작용한 '본 현상', 그리고 정부부처의 공간적 분할에 따른 막대한 낭비가 공존하고 있다.

독일 국민들은 조만간 연방정부 기능이 베를린으로 완전 통합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와, 필자가 독일에서 지난 연말에 만난 연방 공무원과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국가행정관리의 공간적 분할은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보면서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 같다.

박양호 국토연구원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