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나와 너

입력 2010-01-12 15:39:00

잘 알려진 황희 정승의 일화다. 다투던 계집종 한 아이가 상대의 잘못을 일러바치자 '네가 옳다'고 했다. 곧이어 다른 아이가 거꾸로 상대를 험담했다. 그러자 '너도 옳다'고 했다. 옆에 있던 부인이 보다 못해 '한쪽이 옳다면 한쪽은 그르다고 해야지 둘 다 옳다고 하면 어쩌느냐'고 참견했다. '부인의 말도 옳다'는 게 정승의 대답이었다. 세상일이란 게 한쪽만 모두 옳고 다른 쪽은 모두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의미로 소개되는 일화다.

몇 년 전 영국의 한 자선단체가 세계의 어린이를 소재로 한 동영상을 제작한 적이 있다. 먼저 부자 나라 아이들에게 만연한 비만의 문제가 다뤄졌다. 많이 먹어 살찐 아이들이 겪는 질병의 심각성이 지적됐다. 곧이어 제대로 먹지 못해 휑한 눈동자에 피골이 상접한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불쌍한 일상들이 화면을 채웠다. 너무 많이 먹어 고통받는 아이들과 못 먹어 굶어 죽는 아이들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극과 극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자선의 손길을 기대한 동영상이었다.

미디어법과 4대강 문제를 두고 다투던 우리 사회가 다시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평행선의 대립을 벌일 조짐이 일고 있다. 서울의 기능을 분산, 지방에도 활기를 불어넣자며 법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국가 경쟁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릴 게 뻔한 문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 편가름하는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식의 해법은 아예 기대할 수 없는 문제인데다 원래대로 하자는 쪽과 원안 백지화를 주장하는 양편의 차이가 너무 커 하루아침에 결말이 날 모양새도 아니다.

극과 극의 대립이 심해지는 사회는 당연히 소통도 어렵다. 나만이 옳다고 여기기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충돌하는 정치적 사안이 대개 그렇듯 극과 극의 대립에는 편가름이 뒤따르고 결국 세가 강한 쪽의 주장이 현실화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군중심리까지 가세한다. 정치가 국민을 편가름하는 것이다.

동전의 양면성이 지닌 의미는 나와 다른 남의 존재에 대한 인정에 있다. 내 생각만을 고집하는 사람에겐 다른 편의 말과 행동이 느껴지지 않는다. 보이더라도 외면하고 내 생각이 맞다고 여긴다. 종교는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요. 자비라고 가르친다. 나와 다른 남도 받아들이는 천국의 세상은 요원한 꿈에 불과할까.

서영관 논설위원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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