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구슬이 서말이지만

입력 2010-01-05 07:41:16

요즘, '없다' '부족하다'는 말의 주어는 대개 '콘텐츠'가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문화 콘텐츠' 부족 현상이 자주 도마에 오른다. 그래서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문화도시 대구는 늘 목말라한다. 이런 기갈 현상은 특히 토종문화 콘텐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0년을 손꼽아 기다려온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 같다. 그건 올해가 축제, 공연, 전시 등 문화 콘텐츠 생산에 많은 모티프를 주는 한 해가 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기념비적인 역사만 하더라도, 경술국치 100년-한국전쟁 60년-4·19 50년-광주민주화 30년으로 이어진다. 어느 지역 가릴 것 없이 방송과 신문에서는 전국을 이 잡듯이 누비며 엄청난 특집방송, 특별기획, 스페셜들을 쏟아낼 것이다.

이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경쟁력 있는 토종 콘텐츠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한국전쟁 60주년만 놓고 봐도 반전, 화해, 관용의 메시지가 담긴 다양한 토종문화 콘텐츠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대구와 6·25는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한국전쟁 60년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도시다. 가난과 어둠, 상처 등이 만들어낸 그 당시의 르네상스를 어떻게 그냥 묻어둔단 말인가. 김원일씨의 대표작, '마당 깊은 집'이 뮤지컬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면 좋겠다. 골목 투어의 소재를 넘어 주인공 길남이가 전해주는 '가난과 고생이 만든 삶의 에너지'를 많은 사람이 느꼈으면 한다. '올리버' '레 미제라블'을 넘어서는 감동과 구성력을 가질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발표된 가요도 재조명되었으면 좋겠다. 전쟁 중에 대구에서 발표된 주옥같은 노래들, 특히 '미사의 노래'(가수 이인권)에 얽힌 실화의 순애보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 올해 데뷔 40년을 맞은 가수 이동원씨는 북측의 테너와 함께 남북을 오가며 국민가요 '향수'를 부르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청도에 살고 있는 그의 희망을 우리의 토종 콘텐츠로 만들어 볼 수는 없을까.

올해도 6월까지는 지방선거, 남아공월드컵으로 정신이 없을 것 같고, 후유증까지 걷히려면 여름도 훌쩍 가버릴 것 같다. 한국전쟁은 전후 유산으로 양키시장(도깨비시장)을 대구에 남겼다. 문화전쟁이 치러지는 요즘 대구의 문화판이 자칫 문화 양키시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다. 시간이 없다. 문화유산은 문화산업을 위한 자본이다. 이렇게 핑핑 돌아가는 세상에 돈이 되는 것을 이렇게 묵혀두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서 말의 구슬은 있는데, 누가, 무엇 때문에 꿰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먹기만 하겠다는 심사인가. 천마아트센터 총감독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