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부흥, 칼을 뺀 일본…예산 2배 증액

입력 2009-12-26 08:00:00

他예산 줄인 日정부, 관광만 2배 증액

일본이 관광 부흥을 위해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일본 사가현 아리아케해(海)에 인접한 바다가 보이는 노천 온천.
일본이 관광 부흥을 위해 한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일본 사가현 아리아케해(海)에 인접한 바다가 보이는 노천 온천.
한국인 관광객의 입맛에 맞춘
한국인 관광객의 입맛에 맞춘 '꽃게 비빔밥' 요리.

관광 대국 일본이'칼'을 빼들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엔화 강세와 신종플루 여파로 방일 외국인 관광객은 3, 4년 만에 최악의 해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주요한 원인은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감소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엔화 약세가 절정을 이뤘던 2007년 260만명에서 올해 160만명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같은 기간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300만명에 달해'관광 역조'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그렇다면 다년간'관광 입국'을 외쳐온 일본은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내고 있을까. 그들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전략으로 관광 입국의 부흥을 준비하고 있다. 이달 16~18일 일본 사가현 관광연맹 초청으로 다녀온 팸투어 동안 현지에서 보고, 느낀 체험을 소개한다.

◆관광입국 일본, 위기를 극복한다

외부에 드러난 일본 관광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관광청에 따르면 올 10월 방일 외국인 관광객 수는 15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해 800여만명에 달하던 외국인 관광객 수가 올해는 700만명을 밑돌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평균 환율이 100엔 당 1천300원에 육박하면서, 한국인 여행자들이 현지에서 느끼는 피부로 느끼는 부담감은 매우 크다. 오죽하면 부산에서 일본으로 향하는 선박 여객 편수가 줄어들 정도일까.

그러나 일본은 이 위기를 손 놓고 있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10년 관광청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130억엔으로 잡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각종 예산을 삭감하며 절약을 내세운 일본 정부가 관광분야 예산을 늘린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 또 일본 정부는 최근'관광입국추진본부'를 설치해 새로운 관광 진흥 정책을 세우고 있다. '관광입국추진기본법'까지 제정, 관광 기반 시설 개선과 관광 인력·R&D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이런 노력만큼이나 관광지로 유명한 일본 소도시들의 자체적인 관광객 유치노력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한류 열풍을 이용해 최근 끝난 KBS2-TV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지를 유명 관광지로 변모시킨 것은 일례에 불과하다.

2박 3일간 다녀온 사가현은 관광 부흥을 꾀하는 일본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사가현(佐賀縣)은 부산에서 쾌속선으로 후쿠오카까지 3시간, 내륙으로 1시간 떨어진 인구 80여만명으로 규슈내에서도 가장 작은 현(광역도)이다. 이 곳은 민관의 협력 속에 한국인 관광객 유치기구를 결성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 상품을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사가현 관광연맹 나카시마 과장은 "3년 전 한국인 관광객 유치는 연간 1만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사가를 찾는 외국인 전체 관광객 5만명 중 2만명이 한국인"이라고 했다. 연맹 측은 한국의 케이블TV, 신문, 지하철, 버스 광고를 통해 사가현을 지속적으로 알려왔다. 사가현 다케오(武雄)시 상공회의소의 한 간부는 "5월부터 한국어 강좌를 열고 20명의 직원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다케오시는 최근 '한국 골프 고객 유치 전략'으로 지방정부로부터 상을 받기도 했다.

'사가현 관광연맹' 경우 전직 여행사 직원, 가이드, 호텔 지배인 등 기획력과 마케팅 파워를 갖춘 민간인과 현직 공무원으로 구성된 독특한 조직이다. 현지 한 관계자는 이런 전문 민간인들을 '용병'이라고 부르며, "규정과 절차에 얽매이는 공무원들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며 전문성을 높이 샀다. 이러한 민과 관의 철저한 역할 분담아래 현지 관광 업주들이 전폭 지원하는 시스템이 사가현 관광객 유치 전략의 핵심이다.

◆볼거리, 먹을거리로 승부건다

한국인들이 일본 관광에서 손꼽는 게 온천과 먹을거리. 사가현 역시 다케오와 우레시노(嬉野) 등 유명 온천으로 이름 높은 관광 도시다. 첫 날 방문한 타케오는 1천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온천지. 현지 료칸의 한 업주는 "다케오 온천은 목욕 후 젖은 몸을 말리고 난 후에도 피부의 당김이 없다"고 자랑했다. 다케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자리잡은 우레시노는 사가현에서 가장 큰 온천 고장. 깔끔한 다다미 방에서 사각사각한 느낌의 이불을 덮고 자는 하룻밤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한 사람당 1박 2식에 3만엔 안팎의 적잖은 가격이지만, 한 여관에 숙박하면 다른 여관 온천을 200엔에 즐길 수 있는 '온천 순례 티켓'도 있다.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입욕료 1천엔만 내면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우레시노 시 야마구치 과장은 "이곳은 일본의 3대 미인탕 중 하나"라며 "10·11월에 한국인 관광객 900여명이 찾아왔다"고 자랑했다. 우레시노 시는 이달 중순 한국인 관광객 유치 활동 지원을 위한 예산이 의회를 통과하면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조선 도공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자기 마을 '오카와치야마', 일본 전통 고구마 소주와 전통주인 '사케'를 맛볼 수 있는 양조 마을, 일본 전통 닌자들의 퍼포먼스와 옛 서민 가옥, 관청 건물들이 복원돼 있는 닌자 테마파크도 사가현 관광의 필수 코스다.

먹을거리 중에선 꽃게 요리와 온천 순두부가 이색적이다. 사가현 아리아케해 인근 요리점에서 맛본 꽃게 비빔요리(가니마부시)는 매우 특이했다. 푸짐한 꽃게살을 고명으로 얹은 밥을 네 덩어리로 나눈 뒤 작은 그릇에 담아 소스에 차례로 비벼먹는 게 요령. 함께 나온 가쓰오부시 국물에 말아먹으면 차가웠던 몸이 뜨끈해진다. 1인당 2천600엔으로 5천엔 안팎인 일반 꽃게정식에 비해 저렴하다.

온천 순두부도 사가현에서만 만날 수 있는 토속 요리. 유난히 두부를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사랑하는 음식으로 두부에 온천물을 섞은 국물이 이색적이다. 흐물흐물한 순두부를 숟가락으로 뜬 뒤 짭조름한 간장에 말아 한 덩이씩 먹는게 요령. 함께 나오는 튀김과 고르케가 별미다. 일본 사가현 여행에서 새삼 놀라는 것은 그들의 친절. 가게 앞에 나와 손님들을 태운 차량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미소지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에서 손님에 대한 진심어린 감사함과 관광 부흥을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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