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병동에 근무하던 시절, 성탄절이면 환우들과 어울려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찰스 디킨스의 이나 안데르센의 가 단골 메뉴였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그때를 지금도 두고두고 추억하곤 한다.
안데르센의 동화 에는 알코올 중독인데다 무능한 아버지에게 내몰려 성냥을 팔아야 하는 소녀가 등장한다.
성냥은 팔리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던 소녀는 성냥불을 밝혀 언 손을 녹인다. 한 개비의 성냥불은 소녀에게 맛난 음식 환상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애정의 굶주림을 채워준다. 할머니가 사라질까봐 남아있는 성냥을 모두 태워버리며 소녀는 죽음을 맞는다.
성냥은 어둠을 밝혀주고 온기를 주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 '리베라 메 (2000)'는 연쇄방화죄로 12년이나 감옥살이를 한 소년범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소년이 아버지와 세상에 대한 적개심을 처리하는 방식의 하나로, 충동적인 방화를 선택하였다. 성냥, 라이터, 불 등은 감정의 양면성을 은유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 동화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불쌍하게 죽어간 소녀에 대한 연민으로 포장된 비극이지만, 이면에는 안데르센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확 불 질러버리고 싶은 적개심과 가진 자들에 대한 복수심이 숨겨져 있다.
성냥팔이 소녀는 가난에 허덕이며 구걸로 살아왔던 안데르센의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킨다. 불행했던 어머니의 삶에 연민을 느끼지만, 걷잡을 수 없는 원망은 소녀의 환상에서 어머니 대신 할머니를 등장시키고, 결국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소녀의 죽음은 곧 어머니의 죽음이다. 어머니에 대한 양가감정이 심했던 안데르센은 실제로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어린 시절 상처와 분노를 '방화벽'(pyromania)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로 표출시키지 않고 동화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의 동화에는 왕자와 공주, 왕과 왕비, 천사와 요정, 마귀할멈과 계모, 선과 악 같은 선명한 흑백의 대비와 감정의 분리나 투사적 동일시와 같은 극단적인 심리방어기제를 주로 보이며, 아직 논리적인 사고가 발달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불러일으켰다.
따스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안데르센에게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친아들은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는 '동화의 아버지'가 되었다. 동화 창작은 불우한 세월을 살아야 했던 천재 작가의 자기 구원과 치유의 길이 되었다.
마음과 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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