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암릉코스 한꺼번에 즐긴다
북경의 만리장성은 달에서도 볼 수 있는 유일한 지구 건축물. 또 없을까? 있다. 그것도 한국에 있다면 그것은 지구를 넘어선 태양계 차원의 기념비적인 일일 것이다. 1974년 여의도 전도대회에 온 빌 그레이엄 목사는 "지구 중심부에 점이 하나 있고 주변에 실오라기 같은 흔적이 있다"고 말하고 "나사에서 판독을 해보니 실오라기는 만리장성이고 점은 마니산으로 밝혀졌다"고 말한 바 있다. 4342년 전 국조(國祖) 단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제단을 찾아 대륙을 남하하다가 문득 마니산 참성단에 제단을 쌓고 건국의 웅지를 하늘에 알렸다. 개국의 성소로 랴오허강가의 높은 산맥들이나 백두산, 태백산 등 명산들을 물리치고 469m의 마니산을 택한 이유는 뭘까. 그 비밀을 찾아 강화도를 찾았다.
◇역사적 사건'유물 집중 '호국의 보루'
강화는 그 자체로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적 사건과 유물이 집중되어 있다. 섬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경주 못지않은 유적 분포를 자랑한다. 지정문화재 105건을 포함하여 모두 539건이 강화도 전역에 퍼져있다.
강화도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온갖 외세침탈의 수난을 홀로 견딘 호국의 보루였다. 고려 때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왕실은 강화도로 천도해 내성(內城), 외성을 축조하며 장기 항전에 대비했다. 1270년 개경환도 때까지 39년 동안 고려의 임시수도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국난 때마다 임금과 조정이 대피하는 피난처 역할을 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 굴욕도 당시 최후의 보루였던 강화도가 무너지면서 비롯되었다. 우리나라 타율적 개방의 첫 단추였던 운요호사건도, 조선이 제국주의들의 사냥터로 전락한 단초가 되었던 병인양요, 신미양요도 모두 강화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갯벌'계절 변화 뚜렷…1년내내 북적
강화도는 갯벌과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 종합관광지.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데다 계절마다 변화가 뚜렷해 사계절 내내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취재팀은 산정산악회 지홍석 대장의 안내로 마니산 산행에 나섰다. 오늘 산행코스는 정수사-참성단-단군로-마니산안내소로 내려오는 9km코스. 취재팀이 정수사 입구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일행을 반긴다. 겨울산과 비의 불협화음을 투정하며 일행은 산으로 오른다. 건조한 날씨 탓에 낙엽은 바짝 건조해 있다. 중턱 쯤 올랐을까.
"차르르르~ 차르르르~"
작은 떨림이 산중에 고요하게 울려 퍼진다. 소리의 출처를 찾아 일행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뿔싸! 산밑 가랑비가 어느 새 눈싸라기로 변해 낙엽을 때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낙엽과 눈의 앙상블? 자연의 아름다운 공명(共鳴) 앞에서 산꾼들은 잠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정수사에서 참성단에 이르는 구간은 약 2.8km, 전 구간이 암릉코스로 되어 있다. 일행은 스틱을 접고 본격적인 암릉산행에 나섰다. 서해의 찬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눈발에 길은 질척이지만 수시로 펼쳐지는 발밑 경치에 피로를 씻는다. 성채처럼 쌓인 바윗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암릉사이로 마니산 정상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상에 서니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도면 쪽 갯벌이 해무 속에서 희미하게 펼쳐진다. 강화도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에 랭크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명소. 그 자체로 천연기념물 415호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다.
◇해마다 천제, 전국체전 성화 채화
저어새와 갈매기가 이곳을 자양삼아 둥지를 틀고 철마다 잡히는 쭈꾸미, 바지락, 숭어, 밴댕이는 이곳의 명물들. 짙은 연무사이로 수많은 물줄기들이 모세혈관처럼 길을 내 갯벌은 온통 회색 파스텔톤을 뿌려 놓은 듯하다. 강화에서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산다"고 할 정도로 갯벌은 주민들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석모도와 장봉도를 품고 있는 서쪽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일행은 참성단으로 향한다. 참성단은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한라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전국의 기가 모이는 혈자리로 알려져 있다. 1999년 한국정신과학학회에서 전국의 지기(地氣)를 측정한 결과 참성단이 65회전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조사되었다. 해인사 독성각 46회전, 운문사 죽림현 20회전, 팔공산 갓바위 16회전 순으로 뒤를 이었다.
시조 단군이 아들 부루(夫婁)를 시켜 참성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린 것도 이곳이 홍익인간의 개국 터로 부족함이 없는 성소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해마다 개천절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전국체전 때는 성화 채화행사를 열고 있다.
취재팀은 참성단을 지나 선수등산로 쪽으로 진행한다. 다시 한 번 롤러코스터 같은 암릉에 몸을 맡긴다. 멀리 바위군(群)속으로 강화해협이 연무 속에서 아득하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함대는 정족산성에서 패한 후 이 해협을 따라 도주했다. 보고를 받던 나폴레옹 3세가 분을 못이겨 술잔을 던졌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신미양요 때 어재연 장군이 미국군대에게 빼앗긴 '수(帥)'자 깃발이 138년 만에 귀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취재팀은 단군등산로를 따라 하산 길로 접어든다.
◇한강'예성강'임진강 만나는 '삼합수'
강화바다는 한강, 예성강, 임진강이 만나는 삼합수(三合水). 세계적으로도 세 강이 동시에 만나는 지형은 드물다고 한다. 게다가 9m를 넘나드는 세계 최고 조수간만의 차가 강줄기의 기운과 합해지면서 이곳은 한반도의 기맥(氣脈)으로 자리 잡았다.
겨울에 찾은 마니산. 산행을 왔다기보다 역사순례를 다녀온 기분이었다. 불평하며 올랐던 암릉들도 알고 보면 몽골의 창검을 막아내던 성터들이 아닌가.
국조(國祖)가 지목한 성소답게 외형적 성장도 눈부시다. 동아시아의 허브 영종도 공항엔 국제선이 바삐 날고, 21km의 인천대교도 서해안고속도를 이으며 국토의 대동맥으로 뻗어가고 있다. 인근의 파주 신도시도 장차 통일에 대비한 계획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건국에서부터 외세와 맞선 호국정신이 서려있는 강화도 마니산. 서해 북단의 조그만 산을 넘어서 통일한국의 중심지로 웅비하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글'사진 한상갑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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