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고단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편이 이웃집 남편과 비교되고 친구 남편과 비교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그만 내 삶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먹구름처럼 몰려들면서 신세 한탄을 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불만투성이가 됩니다.
동네슈퍼를 놔두고 삼십여분을 발품을 팔아서 사 온 콩나물도 꼴도 보기 싫어집니다. 세일할 때도 마음대로 떡하니 티셔츠 한 장 사 입지 못하고, 떨이로 나온 3천원, 5천원짜리 먼지가 풀풀 나는 옷을 고르던 신세가 한탄스러워집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문갑 서랍에서 제 생애 첫 가계부였던 15년 전의 가계부를 펼쳐 듭니다. 가계부 속에는 누렇게 바랜 영수증들이 이제는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지만,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가계부 속에는 돈이 나간 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으려고 빼곡히 적혀있는 숫자들이 생각을 멈추게 합니다. 그리고 빈 여백에, 지금보다 더 가난했던 우리 부부의 긍정의 글귀들이 곳곳에 적혀 있습니다.
"10년 뒤에는 우리 집을 꼭 마련하자." "힘들지만 더 열심히 살자." "자기 닮은 아들, 나 닮은 딸." 짧은 글귀들이 눈물이 나게 합니다.
남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친구가 에티오피아 난민 같다고 첫 인상을 말했지만, 나는 까맣고 깡마른 그가 샤프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가진 것이 너무 없다고 어른들이 반대를 했지만,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수중에 있는 500만원이 그 사람의 전부였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 좋았습니다. 믿음직스러워 보였고 마음이 따뜻해 보였습니다.
15년 전 겨울, 산격동 월세방을 시작으로 우리의 신혼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방 한칸, 부엌 한칸이었지만,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이 전부였지만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아나바다 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했습니다. 가계부 귀퉁이에 적은 그대로 10년 뒤에 우리는 작지만 우리들의 보금자리도 일구었습니다. 남편 닮은 아들과 저 닮은 딸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따뜻한 물도 실컷 쓸 수 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니, 남편이 귀하게 여겨집니다. 올해의 가계부를 정리해 봅니다. 현금 영수증은 현금영수증대로, 카드 영수증은 카드 영수증대로 1호 봉투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1년 동안의 결산을 합니다. 굳이 결산을 해 보지 않아도 수입도 지출도 궁색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피부로 알지만 훗날, 남편에 대해 세상에 대해 욕심이 생겨 삶이 고단해질 때 이 가계부를 펼쳐 보렵니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땀 흘리며 몸으로 뛴 지난날의 우리 부부의 성실함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같이 추운 밤에도 일터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있을 남편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면서.
문현주(대구 북구 태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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