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작가 송영욱·한국화가 김문희 개인전, 20일까지 봉산문화회관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 온듯 만듯 가버리는 2009년 뒤통수에 대고 입을 삐죽거리며 한 마디 던져본다. "벌써 가려구?" 하지만 음절들은 뒤통수에 닿기도 전에 얼어버린 숨결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2009년이 삐쳤나보다. 아쉬움을 달래보려 봉산문화회관에 갔다. 관객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기억에 남겨둘 만한 젊은 작가 두 명의 전시가 가는 한 해의 옷자락을 붙잡고 씨름한다.
설치작가 송영욱의 작품은 2층에서 20일까지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입구에 문(門) 하나가 가로막아 선다. 기억으로 떠나는 문이자, 그 자체가 기억의 흔적이다. 작가는 '기억의 더께'라는 제목을 붙였다. 문 뒤에 문이 있다. 그리고 다시 문이 있다. 뒤따르는 문들은 공중으로 점점 높아져간다. 마지막 문은 손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망각 곡선'이다. 작가는 수많은 주제 중에 하필이면 기억을 택한 이유에 대해 "자신을 돌아보던 과정에서 결국 기억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기억은 형상화할 수 없는 비물질. 하지만 작가는 특유의 감수성으로 '껍질'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기억에 모양을 부여했다. 영남대 출신의 작가 송영욱(34)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금호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있다. 2009 아트대구, 2009 국제아트페어에서 유망작가로 스카우트돼 특별 부스전에 소개됐으며, 유명 전문 컬렉터가 그의 설치작품 전체를 소장하게 됐다. 리아트 갤러리(14일까지)에서 다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3층에선 한국화 작업을 하는 김문희 개인전이 20일까지 열린다. 작가는 '현간'(玄間)의 개념을 작품에 도입했다. 말 그대로 '검은 공간'이다. 검은 공간은 아무 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무엇으로든 채워질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작업에서 콩테를 반복해 칠하면서 화면을 검게 비워내고, 그 위에 이미지를 그려 공간을 만들어냈던 작가는 이번에 색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한국화에 걸맞게 분채와 석채를 통해 면화로 만든 천 위에 모필로 화면을 구성했다. 검은 바탕을 만드는데만 여덟 번의 덧칠이 필요했고, '고목'(古木) 이미지를 그려낼 때는 수백번이 넘는 붓질이 필요했다. 하지만 작가는 서두르지 않았고, 얕은 수 쓰기를 거부했다. 집요하고 우직하게 작업했다. 결과물은 진중한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김문희가 그린 검은 공간은 깊이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고목의 이미지는 되레 생명력을 떠올리게 한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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