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지대 사람들]시인 이하석

입력 2009-12-10 11:00:15

시를 위한 최소한의 공간…반성과 깨침의 연속

시인은 늘 스스로를 유폐시켜야 한다. 화려하고 갈 곳 많은 세상이지만 시인은 자신만의 토굴에서 고독해야 한다. 마늘과 쑥을 먹고 100일을 난 곰처럼, 미련하지만 우직하게 살아내야 그 속에서 영롱한 시들이 나온다.

우리가 읽는 시 뒤에는 이처럼 시인의 고독과 쓰라림이 묻어있다. 시의 뒷맛에는 늘 바람 냄새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시인 이하석(62)씨의 토굴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했다. 이 시인은 3년 전 퇴임 후 자신만의 작업공간을 찾다가 가창 상원리에 집을 빌려 작업실로 꾸몄다. 월세 5만원. 작업실에는 10년이 넘은 책상과 노트북, 그리고 책들이 전부다. 참 소박하고 간결한 살림살이다.

'밥벌이'를 위해 글을 쓰던 그가 자신만의 작업실을 가진 것은 '99%의 빈둥거림과 1%의 글쓰기'를 위해서다.

이 시인은 자연 속에 자리 잡으면서 소소한 즐거움들이 생겼다. 봄이면 우산나물, 취나물을 뜯으러 뒷산에 오르고 감나무 잎을 햇살에 잘 말려 감잎차를 장만한다. 등산하며 옹이진 나무를 잘라다가 솟대도 몇 개 만들었다. 색칠까지 해서 제법 그럴듯하다. 식물 씨앗도 받아놨다. 봄이 오면 씨앗을 심어볼 작정이다. "자연의 깊이와 내면의 폭이 느껴져요. 자연의식이 짙어지는 것이, 시에도 그대로 드러나지요."

그는 시를 쓰지 않고 '만든다'. 시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꼼꼼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시를 만든다. 즉흥적인 감정과 정서를 철저히 통제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시가 나오는 이유다.

시의 긴장을 조금은 뺀, 산문과 소설, 동화, 기행문 등도 간간이 발표해왔다. 조만간 경주 남산 이야기를 적은 '코 떼인 경주남산'을 발간할 예정이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우문을 건네니 시인에게서 '열정'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맹렬한 독서와 끊임없는 자기 연마, 반복된 작업을 싫증내지 않는 것이 열정이지요.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예요."

시인은 작가의 작업실을 스님의 선방과 비유했다. 늘 끊임없는 반성과 깨침이 있는 공간이다. 그의 선방에는 낡은 책상 하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군더더기를 배제한, 시를 위한 최소한의 물품만이 갖춰져 있다.

"깊은 밤, 사위가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데 글을 매만지고 있으면 아득한게, 우주 소행성에 있는 것 같아요. 달은 휘영청 밝고 고라니 울음 소리가 들리고…. 그 속에 세계의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비밀에 닿을 듯 말 듯 한 게 시인이지요."

평소에는 소박하고 절제된 공간이지만 특별한 날이 되면 이 작업실은 시인들의 윷놀이로 떠나갈 듯 시끄럽다.

"시인에겐 여행도, 전시 관람도, 빈둥거림도 글쓰기의 연장선상입니다. 그런 여가시간에도 끊임없이 적절한 언어를 찾고 있는 것이죠. 내년쯤이면 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시인의 아홉 번째 시집이 궁금하다. 우주 소행성에서 쓴 시 말이다.

나는 일찍이 도시의 사랑을 다듬어 말했지만

지금은 자작나무 숲에 대해 쉽게 노래하련다.

자작나무 숲에 다녀왔거든.

가까이 와보렴. 나의 온몸에서

서걱이는 잎들과 그 바람 소리가 들리잖니?

너희들이 빌딩 속 그늘 깊은 아래

내려가 숨어 놀 때

나는 온통 자작나무 숲에 있었지.

숲은 컴컴하다고?

천만에. 자작나무 숲은 온통 희고 환했지.

너희들은 상상이나 하겠니?

그건 식물 도감에도 나오지 않는 사실이란다.

이하석, '또 다른 길' 중에서 -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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