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1단계 합격, 수성구 고교도 5명 안돼

입력 2009-12-02 10:26:13

위기의 대구 고교 교육…

대구 고교의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지역·고교 간 학력 격차가 고착화돼 내부적인 경쟁 열기가 식은 반면 대입제도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대학 진학 결과에서 부산과 광주에도 우위를 내주고 말았다. 특히 학력 상위권에 포진한 특목고와 자사고, 자율학교 등은 대입제도 변화에 학교 전체가 능동적으로 대처할 뿐만 아니라 수업과 진학지도에 교사들이 쏟는 열정도 뜨거워 수성구 고교들조차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지금이라도 각오를 새롭게 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대구 고교들도 지방대 추락의 전철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현장 취재를 통해 대구 고교들의 문제점과 우수 고교들의 강점을 비교,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축! 서울대 수시모집 특기자 1단계 2명 합격'

얼마전 '명문고'로 알려진 수성구 한 고교 교문에 내걸린 현수막이다. 혹시나 해 다시 봤지만 최종 합격도 아니고 20명 합격도 아니었다. 한때 매년 20명 안팎씩 서울대 합격자를 내던 학교가 지난해 고작 1명에 그친 아픔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대구 8학군 수성구 고교의 입구를 장식하는 구호로는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따지고 들면 그리 낫다고 할 고교도 대구에는 별로 없다. 서울대 수시모집 지역균형선발과 특기자 전형의 1단계를 통과한 대구 수험생이 200명선이니 70개 고교로 나누면 학교당 3명꼴도 되지 않는다. 수성구 고교 중에도 1단계 합격자를 5명 이상 낸 곳은 거의 없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합격자가 186명에 그치자 최악이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200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1993년 이후 15년 만이었다. 2009학년도 입시에서는 더 떨어져 겨우 143명이었다. 이전 통계가 불분명한 탓에 일부에서 '사상 최악'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올해 다시 그보다 못한 결과를 낸다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할까. "서울대가 전부냐"라는 반박도 의미를 잃었다. 최상위권 일부 수험생이 의대와 한의대에 진학하는 걸 빼면 수도권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숫자는 서울대보다 더 급격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수성구 신화

한때 수성구는'대구의 강남 8학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뜨거운 교육열과 높은 입시 결과를 자랑했다. 지금도 학력 면에서는 뒤질 게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얼마전 전국 고교의 2009학년도 수능 성적이 공개되자 "역시 수성구"라며 무릎을 치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이를 수성구 고교의 경쟁력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영역별 1등급 수험생 비율이 전국 100위 내에 든 수성구 고교들의 경우 상위권 재수생 비율이 너무 높아 실질적인 대학 진학률이나 진로 만족도가 오히려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전만 못하긴 해도 수성구 고교들의 학력이 평균적으로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수성구 몰락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의평가나 수능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다 보니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모집에 집중하는 관행이 뿌리박힌 것이다. 수능 위주 진학지도는 고교나 교사 입장에서 한결 편하다. 대학별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수시모집 전형을 연구하고 장기간 준비할 필요 없이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강도만 높이면 상당 부분 해결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수시모집이 조금씩 확대되자 수성구 고교들은 내신 중심 전형이라 학력 높은 고교는 불리하다며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수시 비중은 조금씩 커져 2007학년도에 전체 모집인원의 절반을 넘어서더니 2010학년도에는 57.9%로 높아졌고 2011학년도에는 60%를 넘는다. 그만큼 정시의 문이 좁아지는 셈이다.

게다가 최근의 수시모집에서는 내신 영향력이 조금씩 낮아지고 논술, 심층면접 등 대학별고사가 당락을 좌우하는 추세다. 논술이나 심층면접 실력은 단기간에 쌓이는 게 아니므로 정시모집에 집중하는 방식으로는 성과를 거두기가 극히 어렵다. 지난해 덕원고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대 10명을 비롯해 상위권 대학 진학에서 우수한 결과를 낸 것은 방학 동안 논술캠프를 열고, 교사 논술연구모임을 만들어 수업모형을 개발하는 등 2년에 걸쳐 준비해온 결과라는 점이다.

◆높아지는 불신과 대구 탈출

수성구에 비하면 비수성구 고교들은 그동안 학력 향상이나 진학지도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상위권 중학생들이 3학년만 되면 수성구로 빠져나가는 통에 우수 신입생 유치가 어렵다 보니 수시모집에 더 적극적으로 대처해 적잖은 성과를 거둬왔다. 수시를 활용해 수성구 고교보다 많은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한 고교도 상당수다.

하지만 수성구 고교들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쌓이면서 비수성구 고교들의 노력도 빛이 바랬다. 수성구로 옮겨가도, 그대로 있어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이 커짐에 따라 타지 고교로 눈을 돌리는 중학생이 급격히 늘었다. 주목받는 고교들은 예외없이 1학년 때부터 수준별 수업과 개인별 맞춤 진학지도, 수시와 정시 동시 대비 등을 통해 빼어난 진학 성과를 보인다. 지난해 도입된 입학사정관 전형도 일찌감치 준비해 대응하고 있다.

현대청운고 허석도 진학지도부장은 "2006년부터 입학사정관제를 염두에 두고 교과수업, 동아리활동 등 학생 개인의 모든 이력을 기록하고 교사나 외부 인사가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주는 진학지도이력철을 운영하고 있다"며 "고교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면 사교육에 절대로 못 이긴다"고 말했다.

점차 확대되는 입학사정관 전형은 수시모집에 이어 대구 고교 교육에 두 번째 치명타를 날릴 가능성이 크다. "대학들의 호응이 낮아 얼마 가지 않아서 사라질 제도다"라거나 "지금의 고교 여건에서는 준비하기가 불가능하니 뭔가 다른 방법이 나올 것"이라며 팔짱을 끼고 있다가는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형국이다. 올해 초만 해도 주춤거리던 대학들은 교육과학기술부 서슬에 어쩔 수 없이 2010학년도에 입학사정관 전형을 신설 또는 확대한다고 했지만 2011학년도에는 전체 모집인원의 9.9%까지 확대한다고 밝혀 대세임을 인정했다.

수성구 고교부터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상위권 중3생들의 타지 유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상위권의 유출은 리딩그룹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는 3년 뒤 대입 성과와 직결된다. 상위권의 타지 유출이 2, 3년 년 전부터 폭증한 점을 감안하면 대구 고교들은 아직도 더 추락할 여지가 있다.

수성구 한 고입학원 진학담당자는 "방학 때 교과 보충을 위해 학원을 찾는 특목고나 자사고 진학생들은 중학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라며 "이들이 보여주는 학교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대구 고교들이 절반이라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타지 유출을 한명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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