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대학과 책]중국을 뒤흔든 한국인의 상술

입력 2009-12-02 07:20:15

중국시장에서 진검승부를 하라

▨조평규,『중국을 뒤흔든 한국인의 상술』(달과 소, 2006)

일전에 한국방문 계획을 알려왔던 중국 인사 한 분이 일정이 늦어질 것 같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이유인즉, 제때 한국행 항공권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한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중국을 내왕하는 사람이 현격히 줄었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미국발 금융 위기로 인해 갑작스러운 위안화의 환율 급등, 중국의 현지 물가 상승, 그리고 신종플루까지 겹쳐서 중국으로 가는 한국인들의 수가 대폭 감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항공권이 없다? 혼자 추측에, 어려운 항공사 여건 때문에 운행편수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여행사에 자문을 구한 후 금방 저의 추측이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 항공사의 운항회수가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행 항공권이 귀한 이유는 한국인의 중국 여행이 줄어든 대신 한국을 찾는 중국인의 수가 대폭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행 목적도 성형수술에서 쇼핑까지 다양하다고 합니다. 관련 인사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지난 해 금융위기 이후 값싸진 '한국'을 구매하려는 입국자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데 그 중 일본인, 대만인, 중국인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내한 목적은 쇼핑이라는 점에서 같지만 행태가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대만인들은 구경만 하는'윈도 쇼핑' 위주인데 비해 일본인들은 고급 화장품이나 의류 위주로 쇼핑 여행을 하고는 귀국하기 직전에 김이나 김치 등의 식료품을 구매한답니다. 이들은 한국 나들이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이며 쇼핑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반면 대륙 중국인들의 쇼핑은 다릅니다. 내한 목적에 맞게 일정 전부가 쇼핑입니다. 소위 싹쓸이 쇼핑을 즐긴다고 합니다. 도매시장, 재래시장, 백화점을 누비며 화장품, 의류는 물론이고 각종 전자제품에서부터 생활 소비재까지 닥치는 대로 구매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물으면, 우선 한국 제품이 질이 좋고, 가짜가 없다는 것입니다. 가격 면에서도 같은 제품인데도 중국 매장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절반이면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이 쇼핑을 위해 한국을 찾는다는 것, 이것은 소비자로서의 중국 수준이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잠시 주춤해진 한국의 중국 진출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이미 한국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중국 진출의 노하우를 얻었습니다. 조평규의 『중국을 뒤흔든 한국인의 상술』(달과 소, 2006)이 그 대표적인 업적물입니다. 내용을 보면 실증적인 경험을 구체적이고 실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모조품 시장을 단속하면서도 방치하는 이유, 그리고 모조품 시장이 없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조품 시장으로 유명한 베이징의 홍치아오시장(虹橋市場)은 수시로 대대적인 단속을 하지만 며칠 문을 닫을 뿐 여전히 각종 가짜 명품들을 버젓이 내놓고 팔고 있습니다. 프라다 핸드백 1만위안, 펜디 손지갑 5천위안, 롤렉스 시계 1~2만위안, 몽블랑 만년필도 1천위안이면 구할 수 있습니다. 한국 가수들의 최신CD와 한국담배인삼공사의 홍삼, 한국산 휴대폰, 고급 양주 등 한국의 유명 브랜드 제품도 버젓이 거래되고 있습니다. 가끔씩 중국 정부가 단속을 벌이지만 시장의 규모와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 때문에 느슨한 단속을 시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벌 방법 역시 실효성이 없습니다. 판매액이 총 5만위안 이상이어야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만 모조품 판매업자로부터 압수하는 물건이 대부분 5만위안 이하이기 때문에 실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방 정부의 보호주의, 인명 사고가 아닌 경우라고 방관하는 공안국, 사법권이 없는 공상국, 지역 유지나 권력기관의 비호 등이 결합해 이들을 유지시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시장 시스템 때문에 중국에 진출한 많은 외국 기업들이 실패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과 중국 스스로 '중국 명품'을 기획하면서부터 중국이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모조품이 '중국'의 브랜드 가치에 손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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